성경으로 돌아간 종교개혁, 한국교회 안 ‘성경’ 권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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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간 종교개혁, 한국교회 안 ‘성경’ 권위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7.09.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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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특별기획, 한국교회 개혁과제 ① ‘오직 성경’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교회는 재도약과 후퇴의 기로에 서 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회의 진정한 변화를 촉구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달로 95개조 반박문이 전 독일에 퍼지게 되면서 시민의 지지를 받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켰다.
 
루터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태동한 개신교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무색할 만큼 사회적 신뢰를 잃고, 세상 속에 빛과 소금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본지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과 영향을 조명하는 한편 오늘날 한국교회 개혁을 이루기 위한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죽음까지 각오한 이들의 ‘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을 뜻하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는 중세 종교개혁 5대 솔라 중에서도 진수이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개혁이었다. 
 
중요하게 살펴볼 점은 중세시대를 관통하는 어느 종교개혁가든 성경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로마교회의 지나친 권위에 도전하며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만 바라봤다. 특히 교회와 사제들이 독점하고 있던 ‘라틴어’ 성경을 일반인들도 볼 수 있도록 번역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종교개혁의 상징과 같은 인물 루터와 칼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들보다 먼저 종교개혁의 길을 닦았던 종교개혁가들 역시 ‘솔라 스크립투라’ 정신을 지켜갔다.
16세기 종교개혁보다 무려 400년 앞서 프랑스 사제 발데스는 라틴어 미사예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설교’를 매우 중시했다. 평신도와 여성이 설교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을 할 정도로 말씀을 강조했다.  
 
교황권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무덤에서 시신이 꺼내져 불태워진 ‘존 위클리프’. 그는 살아있는 동안 로마교회 사제들만 읽고 해석할 수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했다. 일반 교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는 문을 목숨을 내놓으며 열었다. 
 
로마교회는 성경의 권위만큼이나 예전, 전통을 강조한다. 당시 교회 분위기는 더했으며, 위클리프가 이른 바 ‘부관참시’까지 당해야 했던 것은 그만큼 성경 번역이 로마교회를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체코의 순교자 ‘얀 후스’ 역시 라틴어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했다. 얀 후스는 체코어로 직접 설교를 하면서 교황권과 로마교회를 강력히 비판하다 화형까지 당했다. 얀 후스가 살다간 지 약 100년 후 가장 강력한 영향은 ‘루터’와 ‘칼뱅’에게 미쳤다. 종교개혁의 흐름은 성경의 권위 회복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은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발행한 직후에서 볼 수 있다. 루터는 1522년 신약성경 5천부를 인쇄했다. 비싼 가격과 유통 상황 등을 고려할 때 3개월만에 매진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1534년 발간된 독일어 성경전서는 12년 동안 10만권이나 팔려나갔다. 
 
구텐베르크 인쇄술과 상업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여건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오직 성경’을 위해 목숨까지 헌신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온전히 성경을 읽을 수 있다.
 
‘성경’ 안 읽는 한국교회 
15세기 영국 노리치에서는 ‘롤라드’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롤라드는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성경을 외워 광장에서 서서 외쳤던 사람들이다. 왜 그들은 성경 66권을 외우고 광장에서 외쳐야 했던 것일까. 
 
그들은 스스로 성경이 되기로 각오한 사람들이었다. 단순한 신앙열심이 아니라, 사제들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관행에 반대하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로마교회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잡아들여 목숨을 빼앗기도 했다. ‘롤라드’의 뜻이 이단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15세기 롤라드는 누구보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성경을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면서 한국교회는 성경을 ‘롤라드’처럼 각오하고 읽고 있을까. 객관적인 통계수치들을 종합해 볼 때 그렇지 못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G&M 글로글로벌문화재단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매일 성경을 읽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19.5%에 그쳤다. 일주일 평균도 1시간 45분이었다. 
 
본지가 전국 11개 주요 신대원생 300명을 대면 설문조사한 결과에서조차 유사했다. 신학생이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는 시간은 1시간에서 2시간 미만이 35.7%로 가장 많았다. 신학생들의 평균 읽기시간은 2시간 43분으로 그나마 일반 교인들보다 높았다. 실제 교회생활로 돌아가 보면 상당수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 모임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이 바쁜 일상 때문에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종교개혁 당시 선각자들의 목숨을 건 ‘솔라 스크립투라’를 생각하면 반성하게 된다. 
 
하나성경관통선교회 대표 이종필 목사는 “성경을 먼저 읽어야 하나님 나라의 제자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서 “인간성을 잃어가고 소외감이 큰 현대 사회에서 위로를 얻고 진짜 길을 찾는 방법은 말씀의 기초로 들어가 성경대로 사는 것”이라고 성경읽기를 강조했다. 
 
500년 전과 오늘날 한국교회 성경해석
역사신학자들은 중세 종교개혁이 성경해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데 한목소리를 낸다. 한국교회 개혁의 출발점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로마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성경의 무게만큼 교회나 교황의 권위, 전통의 권위에 무게감을 뒀다. 
 
한신대 김주한 교수는 “로마교회는 성경을 해석한 데 있어 성경 자체보다 교회 권위를 더 중시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루터와 칼뱅은 성경 그 자체의 권위를 강조한 것이 차이로 여기고 그 외 일체의 것을 폐기시켰다”면서 오늘날의 교회 개혁이 이러한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 서울대 손봉호 명예교수는 “한국교회는 성경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손 교수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는 정당화 할 수 없는 일들이 한국교회에서 자행되고 있다”면서 “2천여 기독교 지성사를 무시하는 오만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오직 성경’ 정신에 더 충실해져야 한국교회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세상의 수많은 비판은 한국교회의 수많은 문제 때문이다. 목회자 성적타락, 교단의 금권선거, 성직매매, 교회재정 횡령 등 부지기수다. 
 
때론 성경보다 교회, 혹은 노회나 총회 결정이 더 권위있게 여겨지기도 한다.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500년 전 로마교회와 다르지 않다. 
 
고신대학원대학교 변종길 교수는 “공회의 결정이라도 성경에 어긋나면 효력이 없다. 예를 들어 총회에서 다수 찬성으로 동성연애는 죄가 아니라고 결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교회와 성도들은 총회 결정이 구속력이 없다고 선언할 권리가 있다”고까지 지적한 바 있다. 
 
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 정성구 박사는 “종교개혁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엄밀히 말하면 교회 개혁이라고 해야 한다”면서 “오늘날에 필요한 교회개혁은 500년전 성경의 권위를 최우선에 뒀던 종교개혁 정신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개혁의 시작점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500년 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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