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계급의 질서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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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계급의 질서를 허물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7.09.1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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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종교개혁 500년 (2) 얀 후스(Jan Hus)

종교개혁의 기초석을 놓은 세 인물 중, 영국에 존 위클리프가 있었다면, 보헤미야에는 얀 후스(Jan Hus. 1372?~1415)가 있다. 체코의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인 후스는, 현재의 체코인 보헤미아에서 종교개혁의 기치를 올렸다. 존 위클리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성경을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얀 후스는 프라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1394년에 신학사, 1396년에 문학석사가 됐다. 1400년에 사제로 서품 된 후스는, 1401년 프라하대학교 철학교수단의 수제장이 됐으며, 그 다음 해에 주임 사제가 됐다. 또한 1402년에는 프라하에 있는 베들레헴교회의 설교자로 임명돼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설교했다.

# 라틴어가 아니라 체코어로 설교

▲ 얀 후스는 종교적인 경건은 사회적인 차원의 영역에서 구현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루터가 ‘오직 믿음’만을 강조했다면, 후스는 ‘사랑에 의해 형성되는 믿음(fides caritate formata)’을 강조했다.

얀 후스는 성당과 수도원에서만 설교할 수 있게 제한한 교황의 말을 어기고 캠퍼스와 강의실에서도 설교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일로 인해 얀 후스는 교황청과 갈등하고 대립했는데, 1415년 종교재판 결과 얀 후스는 화형에 처해졌다. 이 때 남긴 예언과도 같은 후스의 말은 유명하다.

“당신들은 지금 거위(휴스 = 거위) 한 마리를 불태우지만, 한 세기가 지나면 태우지도, 끓이지도 못할 백조(루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얀 후스의 이 말은 백 년 후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마틴 루터는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성당의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을 시작했다.

체코에서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화여자대학교 장윤재 교수(기독교학과)는 그 시작점을 카렐대학의 베들레헴채플로 본다. 지금의 프라하 공과대학의 강당으로 사용되는 이 채플은, 1391년에 체코어로 설교하기 위해 건립된 곳. 장 교수는 “유럽의 첫 번째 종교개혁은 바로 이 ‘언어혁명’에서 일어났다. 라틴어가 아니라 토착어로 예배가 드려지고 말씀이 선포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에 더해 ‘공간혁명’도 종교개혁에 힘을 실었다. 후스가 설교했던 이 공간은 전통적인 성당 건물처럼 긴 직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에 가까운 건물. “후스는 이 공간 안에 대대적인 혁신을 시도했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정사각형의 건물 한 면 가운데 위치한 설교단이다. 직사각형의 성당에서는 제단의 앞쪽에서부터 뒤쪽으로 위계적인 질서가 만들어진다. 맨 뒤에 앉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라틴어로 이루어지는 예배와 성만찬을 멀찍이서 ‘구경’해야 했다. 그런데 베들레헴채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위계질서가 없어진 것이다.” 말씀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해졌고, 공간혁명과 언어혁명으로부터 체코의 종교개혁이 시작됐다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 면죄부 판매-성직 매매 비판

후스는 면죄부 판매와 성직 매매, 교회의 부패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위클리프의 책 ‘De absolutione a pena et culpa’를 그대로 번역한 ‘Quoestio magistri Johannis Hus…… de indulgentiis’도 발표했다. ‘기독교대백과사전’은 “후스가 설교를 통해 교회와 성직자, 수사들의 타락, 세속 권력들의 의무들에 대해 말한 것은, 거의 문자 그대로 위클리프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후스는 “교황 또는 주교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검을 들 권리는 없다. 그는 그의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야 한다. 인간은 돈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에 의해 죄의 용서를 얻는다”고 면죄부 판매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교회는 영원 전부터 구원을 위해 예정된 사람들의 전체 몸이다.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 머리이시다. 인간이 구원 받기 위해 교황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신앙의 조항이 아니다. 교회에 있어서의 외적인 교인됨 또는 교회의 직책들과 위엄들은 당해 인물들이 참된 교회의 일원들이라는 보증은 결코 될 수 없다”고 설교했다.

이런 후스를 신학교수단의 박사들이 지지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반대파들의 압력으로 인해 왕은 교황을 모욕하는 사람들과 그의 칙서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강요 받았다. 또한 설교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면죄부를 사기라고 비판한 세 사람이 참수됐는데, 후스파 교회의 최초의 순교자들이었다고 기독교대백과사전은 설명한다.

▲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답변하는 얀 후스(사진 출처: 위키디피아).

# 교황을 적 그리스도로 규정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부도덕성을 공격한 후스는 교황을 적 그리스도로 규정했다. 한신대 김주한 교수(교회사학)는 “성직자들에 대한 그의 신랄한 공격은 교황청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말하는데, “후스는 사악한 사제들이 ‘거짓 면죄부’를 판매하고, 빌스낙에서의 피 묻은 성체의 빵과 같은 사이비 이적들, 그리고 유물숭배 등으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교회의 머리이시며, 성서만이 우리 신앙의 최종 권위라고 믿었으며, 교권과 세속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김 교수는 얀 후스가 성도들의 도덕 개혁을 철저하게 주장해 당대 교회의 부정부패를 개혁하려고 했다고 본다. 그리고 “후스는 교회의 가장 큰 권위자는 교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도들이 따라야 하는 것은 교회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이고, 성경해석의 권위는 ‘마기스테리움(Magisterium)’, 즉 가르치는 직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만이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후스는 성만찬 때 평신도들에게도 빵과 포도주를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정인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이종성찬(utraquism)’은, 이후 후스주의운동의 상징이 됐다. 이에 대해 송병구 목사(색동교회)는 “그동안 성배가 성찬을 독점하던 가톨릭 사제들이 특권을 상징했다면, 얀 후스 이후의 성배는 사회적 특권을 제거한다는 의미로, 체코 종교개혁의 평등주의의 심벌로, 그 후 체코 사회의 민주화의 상징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한다.

# ‘이종성찬’ 실시

얀 후스의 책 ‘교회에 대하여(De ecckesia)’는 교황의 면죄부 판매와 성직 매매 등을 공격한 후 2년 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저술한 책이다. 1413년에 라틴어로 완성된 이 책은 체코 종교개혁의 기념비적인 저서 중 하나로, 후스는 지상의 교회와 하나님의 교회를 철저하게 구분했다.

장윤재 교수는 “후스는 계급화 된 중세의 제도 교회는 자신을 하나님의 교회와 동일시했다. 게다가 자신을 마지막 심판을 수행하는 절대적인 권위자로 이해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교회 역시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최후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에서 특별히 후스는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에서 첫째가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꼴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것이 복음의 역설이다. 여기서 그는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고 말한다.

얀 후스의 이런 정신은 ‘후스파(Hussites)’라는 이름으로 교회개혁의 중심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후스파의 종교개혁 강령은 1420년 발표된 ‘4개의 파라하조항’에 잘 드러난다. 김주한 교수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제들에 의해 자유롭게 선포될 것 △이종성찬을 시행할 것 △사제들로부터 모든 세속적인 지위를 박탈할 것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죽음을 면치 못한 죄를 지으면 처벌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하나님의 나라의 윤리 및 종말론적인 차원과 연결시켜 이해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후스는 종교적인 경건은 사회적인 차원의 영역에서 구현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루터가 ‘오직 믿음’만을 강조했다면, 후스는 ‘사랑에 의해 형성되는 믿음(fides caritate formata)’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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