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 천만번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 돌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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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 천만번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 돌같은 마음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7.09.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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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 21

*누가복음 10:29-36>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선한 사마리아인, 렘브란트, 1633년 이후, 캔버스에 오일, 685 X 573

2017년, 올 여름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더웠다. 그 뜨거운 날 동안 나는 서울 시내 중학교 몇 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작가교실’ 지도를 했는데, 결국은 8월 초쯤에 몸에 무리가 왔다. 온열환자? 한마디로 더위를 먹고 쓰러진 것이다. 오전 10시가 거의 다 된 시간, 한 중학교 1층 로비에서 나는 기다시피 하여 교무실 앞에 있는 긴 의자에 옆으로 반쯤 누웠다. 어지럼증과 헛구역질, 그리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데 그 때는 왜 그런지 전혀 이유를 몰랐다.

순간적으로 온 몸이 얼마나 무너지는지 ‘이러다가 죽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학 중이라 그 넓은 학교는 으스스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냥 참고 조금 시간을 보냈다. 이제 10분 뒤면 강의 시작인데…

그런데 교무실 옆의 행정실 문이 갑자기 드르륵 열리며 50대의 여성이 나와서 나에게 왜 학교에 왔냐고 물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한 채 내가 지금 아파서 여기서 잠시 쉬는 거라고 했다. 내심 그 여자의 도움을 바란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게 학교에 마음대로 출입하지 말라며, 요란한 문소리를 내며 행정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맨붕. 헐!’이라고 하는가? 

순간, 화가 난 나는 어디서 기운이 낫는지 벌떡 일어나 행정실 안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아프다고 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겨우 그런 말밖에 못하느냐? 이 학교는 기독교학교이고, 교직원들도 모두 기독교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리고 저 창문 밖에 있는 강도 만난 사람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날마다 그걸 보며 출퇴근 하는 사람이 겨우 그런 식으로 밖에 말 못 하느냐? 만약 거지나 노숙인이 왔다면 소리치고 때려서 내쫓을 거냐!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정말 창피하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 식으로 하지 마라!’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태릉 쪽에 있는 그 학교는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있는 거대한 교육재단이다. 이 학교는 학교 입구부터 후문까지 그 누가 보아도 ‘우리는 기독교 학교재단이오!’라고 외치는 듯 학교 곳곳에 기독교의 상징들, 문구들이 뚜렷하다. 또, 중고등학교 캠퍼스 건물 앞에는 멋진 예술작품이 있다. 강도 만나서 정신을 잃은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 품에 안고 위로해주고 있는 화강암으로 된 꽤 커다란 조각상. 2011년에 세워진 그 조각상 뒤편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가복음 10장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내가 나중에 중학생들에게 질문했을 때 단 한 사람도 조각상의 성경말씀이 무언지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행정실 여직원은 꽤 오래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듯 한데 그 조각상 앞을 날마다 지나다니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날, 나는 더위 먹은 육체적 고통보다 같은 기독인, 같은 기독교 학생들의 영적 상태로 받은 충격으로 더 아팠다. 물론 나무를 보고 숲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한편 이 작은 한 부분이 거대한 조직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선한 사마리아인의 조각상을 천만번 보아도, 성경말씀이 돌 위에 선명히 새겨졌어도, 마음이 그 돌보다 더 단단하고 두 눈이 돌처럼 생명력 없는 눈동자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날, 나는 강의를 마치고 그 학교를 나서며 생각했다. 저 조각상 위에 예수님의 붉은 피가 비처럼 흘러도 그 누구 하나 눈 깜짝 안 하고 이곳을 오고가며 ‘오늘은 무얼 먹지? 오늘은 무얼 입지? 오늘은 누구를 만나지?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어디로 놀러갈까?’ 라며 바삐 걸어가겠구나….

함께 기도>>>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아무리 진하고 붉어도 우리는 전혀 놀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무리 헌신을 해도 우리는 조금도 감동하지 않는 듯 합니다. 화강암보다 더 단단하고 지독히도 이기적인 우리의 심장과 두 눈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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