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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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주 가정예배
  • 박경배 외
  • 승인 2017.09.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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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하나님의 생각이 가득하길

빌립보서 4:6~7
찬송 412장


사람에게는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지성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의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여하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은 우리의 미래를 창조하는 본질적인 재료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와 만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십니다.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마귀가 넣어준 것입니다. 자살을 하고 살인을 하는 것 사단에게 생각을 내어준 결과입니다. 사단이 마음을 주장하여 악하고 추하게 만들며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서 생각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을까요?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밭이 옥토가 되고,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점령합니다. 심령이 황패해지고 굳어집니다. 버려진 땅, 사람이 살지 않는 집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므로 우리의 생각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말이 되어 입으로 나오고, 그 말이 행동이 되고 그 행동들이 모아져서 습관이 되며 습관들이 일상화 되어 그것이 사람의 인격이 되는 것이지요. 인격의 여하에 따라서 인생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마음과 생각에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생각이 내 안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회복

빌레몬서 1:8~10
찬송 334장


바울과 빌레몬은 서로 비전과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돈독한 관계였습니다. 바울이 목회자의 권위로 말하면 전적으로 순종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매우 신중하게 또한 어렵게 부탁의 말을 꺼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용납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골로새에 살 때 주인의 집에서 뭔가를 훔쳐 로마로 도주했습니다. 로마에서 방황하다 어떤 범죄로 잡혀 그도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오네시모는 그곳에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헌신적인 일꾼이 됐습니다.
은혜가 깊어질수록 오네시모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처리 문제였습니다. 이를 바울이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원점에 서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당시 노예는 인간적인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도망 노예는 심하게 처벌하여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보낸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빌레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위치에 속해 있습니까? 제자에게 어렵게 용서와 관용을 부탁하는 바울, 죽을 수도 있지만 진정한 회개를 위해 떠나는 오네시모, 명백히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 하는 빌레몬! 모두에게 쉽지 않는 결정입니다. 그러나 모두의 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 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첫 결단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어떤 상황이든 그 역할이 주님 앞에서 주님이 기뻐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고혁성 목사(염광교회)

수요일

감사하는 사람

에베소서 5:19~21
찬송 428장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고 신령한 노래를 부를 때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과 복을 주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이이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 주는 마음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에 서로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세상에 와서 자신의 살이 찢기고 피가 흘리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눅 22:17~19).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인간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라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고난이 따라도 감사함을 갖고 살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평생에 감사하며 서로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목양교회)

목요일

말씀 묵상

시편 1:1~2
찬송 85장


묵상은 온통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One thing)이 묵상입니다.
묵상은 ‘깊이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命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한 철학적 명제라 할지라도 그 생각은 인생문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 닿지 않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일 따름입니다. 존재 확인에 그치지 않고, 존재 이유와 목적을 아는 것이 묵상입니다. 묵상을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묵상을 하면,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줄 믿게 됩니다. 시1:1,2에서 말하는 의인과 악인은 묵상에서 나눠집니다. 의인은 말씀을 묵상합니다. 악인은 자기(自己)를 묵상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악인이요 죄인이며 거만한 자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복 있는 사람이며, 악인은 망하는 것입니다. 바람에 날아가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겨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시1:4).
시편은 하나님을 묵상한 사람들의 시(詩)들입니다. 묵상을 하면 기도가 되고, 회개가 절로 나옵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종래에는 찬양을 합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읽고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평탄하고 형통한 인생이 됩니다.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매일 묵상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거룩하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성령의 조명

고린도전서 2:6~16
찬송 190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의로워지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모든 사람이 보화를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셔야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2:9~10).
예수님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도록 하심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에게는 천국을 비밀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오히려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마13:10~16).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예수님을 믿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넬료를 베드로와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으로 갔을 때 고넬료는 가족과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자 성령님께서 각 사람 위에 임하더니 모두 방언을 말했고 예수를 구주로 믿었습니다(행10:44~48).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 말씀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싶어하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조명이 비추면 말씀을 사모하고 주의 일에 열심을 내게 되지만 성령의 조명이 약해지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일에 사모함이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성령님의 조명이 밝게 비추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님의 조명이 항상 내 삶 가운데 비춰지도록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한용준 목사(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부흥케 하소서

느헤미야 8:1~6
찬송 268장


바벨론 포로 이후에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재건하기로 작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사요 서기관이었던 학사 에스라를 통해 심령의 재건 곧,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성의 건축에 힘썼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고 자신들의 영혼에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곤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의 지도자 에스라를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 앞에 몸을 굽혔습니다. 하루에 6시간씩 한 주간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이 경험한 부흥운동의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깨닫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을 회중 가운데 세워 말씀을 깨닫도록 가르쳤습니다(8절). 그들은 당시의 초막절 집회를 통해 곧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도우셨는가를 깨닫자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에 합당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은 축복을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12절).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들이 순종의 의지로 반응한 것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순종이 나와 가정과 세상을 바꿉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깨달으며 그 깨달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반응하여 모두가 변화로 충만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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