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상조 최철홍 회장 “세상에 내 것은 없습니다”

물질도 명예도 모두 ‘주님의 것’ 고백한 주의 종 이현주 기자l승인2017.08.31 10:32:16l수정2017.09.06 11:53l14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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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두 번이나 죽음 앞에 섰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다. 물질도, 명예도, 그리고 건강도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면 그만이다. 그 깨달음 앞에 서니 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 나이 예순하나. 그는 지금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있다. 

국내 상조회사 선호도 1위, 인지도 1위의 기업 보람상조. 30년 가까이 보람상조를 이끌어온 최철홍 회장에겐 또 다른 직함이 있다. 바로 엘림주찬양교회 담임목사다. 주중에는 보람상조 등 여러 계열사를 보유한 보람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주일이면 부산으로 내려가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을 양육한다. 목사가 되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젊은 날 사업의 실패, 믿었던 동업자의 배신과 사기, 두 번의 자살기도… 이것만으로 최 회장의 삶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보험세일즈로 시작해 보람그룹을 세우기까지 수십 번의 고비를 넘긴 최철홍 회장. 그의 인생 역정을 들어보았다. 

▲ 보람상조 최철홍 회장은 “살면서 이뤄온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다.

두 번의 자살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
스물네 살. 군대를 제대했지만 아직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할 나이다. 여유 있던 집은 그가 군에 있을 때 가세가 기울었고, 제대 후에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다. 투정을 부릴 여유도 없이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첫 직장은 보험회사 총무직. 돌이켜보면 보험회사에서의 첫 직장 생활은 지금의 보람상조를 가능케 한 씨앗이었다. 

총무 월급으로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다섯 식구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보험 영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2년 반, 타고난 친화력과 신뢰감 있는 말솜씨는 고객을 끌어 모았고 꽤 돈도 벌었다. 

“몫돈이 생겼으니 사업을 시작했어요. 한 2년 정도 잘 나갔죠. 그런데 물건을 사기당하고 부도가 났습니다. 빚잔치를 하고 나니 인생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우울증이 왔어요. 결국 한 알 두 알 약을 사모아 자살을 시도했죠.”

여관방을 잡아놓고 새벽무렵 맥주잔에 약을 섞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사나흘 몽롱한 상태에서 생사를 오간 후 병원에서 깨어났다. ‘왜 살아있는 거지?’ 그는 다시 병원에서 메스를 훔쳐 손목을 그었다. 두 번의 자살기도로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그때 어머니가 울며 말했다. 

“야, 이놈아 네가 죽으면 아버지하고 나도 같이 죽는다. 아들이라고는 너하고 형하고 둘뿐인데, 너 하나 믿고 사는데 죽으면 어떻게 하냐… 같이 죽자. 차라리…”
울며 매달리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죽을 거면 1년만 더 살아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최철홍 회장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후 나이 오십이 넘어 법명을 받아 승려가 됐다. 자살을 시도한 아들 때문에 아버지는 매일 아침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드렸다. 절에 데리고 가서 108배도 시켰다. 그러나 젊은 그에게 목탁소리는 평안이 아니라 압박이고 고통이었다. 

“어느 날 새벽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소리를 따라 가보았더니 교회가 나왔어요. 그게 새벽기도였던 거죠.” 

어떤 날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아오고, 어떤 날은 잠이 들어 해가 중천에 떠서야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교회와 인연이 시작됐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예정’이 확실했다. 

또한, 아버지를 전도하여 개종하게 했다. 부산 수영교회에 다닐 때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수없이 기도하고 목사님께 상담했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가덕도 기도원에서 13일을 금식하고 돌아온 날, 그는 큰맘 먹고 아버지에게 교회에 가자고 했다.

13일 금식으로 수척해진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교회 한 번 가자는데 그 소원을 못 들어 주느냐”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마지못해 아버지는 “그래, 딱 한 번이다” 이렇게 답하시고는 주일에 교회를 찾아오셨다. 놀랍게도 설교를 듣던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였고, 아들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네가 참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에게 목사님의 설교는 충격적이었다. 죽음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불교의 교리와 달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였고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예수님이셨다. 다음 주 어머니와 같이 교회에 찾아오신 아버지는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았고, 성도들의 축복을 체험했다.

그렇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85세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시장과 노인정을 돌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셨다. 승려였던 아버지가 구주를 영접하고 새 인생을 찾은 날, 그날을 최 회장은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영원한 최 회장의 멘토였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극한의 직업은 그를 ‘상조’로 이끌어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두 번의 자살기도로 죽음에 직면했던 최 회장은 어차피 죽을 목숨, 새 삶을 시작했으니 못할 것도 없다는 각오가 생겼다. 이렇게 된 바에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가장 낮고 천한 직업을 찾으니 마을을 돌며 분뇨를 치우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도 보증금을 내야 했다.

세상에 분뇨를 치우는 직업에 자릿세라니… 한숨이 밀려왔다. 지나는 길에 마주친 ‘장의사’ 간판을 보고 최 회장은 무작정 들어가서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그와 ‘상조’와의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는 사장님의 만류에도 조르고 졸라 3개월을 일했다. 그 3개월은 염습부터 장례 절차 전체를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후 상조와의 우연한 인연이 계속됐다. 부산에 새로 생긴 상조회사에서 설계사 교육을 시켜달라고 했고, 보험 세일즈 경험과 장의사에서의 3개월 견습 기간은 큰 도움이 됐다. 

그의 소문을 들은 공원묘지 사장이 집까지 찾아와 “장례는 당신이 맡고 공원묘지는 나에게 연결해 달라”고 했다. 사업수완이 좋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장례업은  날개를 달아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자기 자본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다보니 잘되면 번번이 빼앗기거나 쫓겨나길 반복했다. ‘내 사업을 하자’ 그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114를 찾아가라는 영감을 주시는 거예요. 그때 만해도 상호를 찾으려면 114에 전화문의를 하던 시절인데, 무작정 찾아갔더니 믿는 분을 만났어요. 권사님이 가나다라로 시작하는 상호 배열 상 앞쪽이 전화번호 안내하기 유리하다고 지혜를 주셨죠.”

‘가’로 시작하는 상호를 찾았다. ‘가나안 장의사’. 그렇게 본격적인 장례업이 시작됐다. 114에 문의하면 가장 앞에 있는 가나안 장의사를 소개했다. 하지만 장례업은 물건을 파는 세일즈가 아니었기에 일이 없을 때는 별 수 없이 놀아야 했다.

또 다른 사업과 병행하면서 병원 영안실에 들어갔고, 탁월한 사업 능력과 그의 신앙을 귀히 본 부산 지역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3년 동안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이제 그만의 사업을 시작할 ‘시드머니’가 마련된 것이다. 

▲ 주일에는 부산 엘림주찬양교회 담임으로 사역하는 최철홍 목사가 새가족을 환영하고 있다.

보람상조의 시작, 성공과 시련
1991년 12월, 부산 동래구 안락동 4층 건물 지하층과 2층을 임대해 보람상조가 출발되었다. 허름했지만 내 회사였다. 인생을 마감하는 장례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 이 두 가지가 보람상조의 중심축이었다. 여기에 최 회장만의 아이디어가 보태졌다. 회갑과 칠순 및 돌잔치, 결혼 야외촬영까지 상조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시켰다. 생애주기별로 서비스가 가능한 상품들을 개발했다. 

해마다 좀 더 나은 곳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서울로 진출했고, 상조업계를 선도하는 ‘리딩 기업’이 됐다.
“회사가 커지니까 여러 악재가 닥치더군요. 미국에서 리무진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했었는데, 영구차 디자인 관련 소송이 미국에서 붙었고, 한국에서는 노조가 압박을 가했어요. 이런 와중에 내부 고발까지 정말 정신이 없었죠.”

젊은 시절, 고생을 마다않고 돈을 벌어 상조회사를 차렸고, 20년 넘게 성실히 이끌어왔다. 그러나 한꺼번에 몰려온 위기는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그의 명예에 큰 상처를 입혔다. 300억 횡령이라는 오명을 쓰고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항소심에서 법원의 권고로 검사의 공소장이 주위적으로 횡령, 예비적으로 배임으로 변경 적용돼 3년 형을 받게 됐다.(※ 공소장에 예비적 기재를 인정하는 이유는 검사가 공소사실에 대한 심증형성이 충분하지 않거나 법률적 구성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 기재한다) 당시 가장 잘나가는 ‘상조업계 길들이기’라는 말이 돌았고, 1위부터 5위까지 모든 상조회사가 실형을 받았다. 


“억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죠. 재판을 받으면서 억울한 것만 생각했는데, 성경을 읽다가 요나서에서 하나님이 때리신 이유를 알게 됐어요. 주님의 종으로 순종하지 못한 것 그게 원인이었어요.”

늘 죽음과 직면해 살아왔던 그에겐 ‘신앙’이 큰 버팀목이었다. 새벽마다 무릎을 꿇었고,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다. 기도하던 중에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고, 2000년 후반부터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장로였을 때 부산에 주찬양교회를 개척해 성전까지 건축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강도사’에 머물러 있었다. 

“사업을 하니까요. 사업이랑 하나님의 일을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목사안수를 미루기만 했죠. 결국 하나님은 제가 가진 것을 하나하나 빼앗아 가시더라고요.”

돈도 명예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부질없었다. 보람그룹 회장으로 열정을 다해 살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참담했다. ‘네 돈이더냐? 네 명예가 중하더냐?’ 마치 하나님께서는 그의 속을 꿰뚫어 보듯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셨다. 

목회에 순종하지 못한 결과임을 깨달은 그는 옥중에서 주일 오전 오후, 그리고 평일 성경공부를 이끌며 목회를 했다. 새신자 상담도 그의 몫이었다. 하나님의 위로가 절실한 곳에서 말씀을 전하며 목회 아닌 목회를 했다. 별다른 목회자료도 없었다. 그저 성경을 반복해 읽으며 설교를 준비했다. 그렇게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고 그는 1년 반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최철홍 회장은 곧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칼을 드셨다. 갑작스러운 허리통증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전립선암 3기말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악성 종양이므로 4개월 남짓, 길어야 6개월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라며 사망선고를 내렸다. 

“길어야 6개월이라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그래 남은 인생 몇 달이라도 주의 종으로 순종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곧장 부산으로 목회하러 내려갔어요.”

죽음 앞에서 목사로 서다
2013년 5월 목사안수를 받고 부산으로 내려가 엘림교회를 담임했다. 장로일 때 세운 주찬양교회와 합병을 해서 엘림주찬양교회가 됐다. 두 달 동안 그의 잠자리는 강대상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지 못해서 세운 결과였다. 회개가 필요했다.

최 회장은 매일 밤 무릎꿇고 기도하며 남은 시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눴다. 목회를 하는 동안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놀랍게도 암덩어리는 줄어들었고, 암 수치는 정상인보다 낮아졌다. 2013년 12월을 넘길 수 없다던 최 회장은 2014년을 지나 지금 2017년까지 회사 일과 목회를 병행하며 끄떡없이 살아있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젊어진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살려주셨어요. 그러니 당연히 주님을 위해 살아야죠. 새 생명이 시작된 후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보람그룹도 그리고 저도 말이죠.”
2012년 사회봉사단을 출범한 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한 보람그룹은 ‘이라크 해외 나눔 한방의료봉사’와 ‘콩팥사랑캠페인’, ‘사랑의 의료봉사’, ‘지역 어르신 목욕 및 배식봉사’, ‘행복나눔 김장담그기’ 등 다양한 나눔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업을 세웠다. 100교회 개척이라는 그의 신앙 목표 달성을 위해 ‘CH100’이라는 회사를 세운 것. 4년 밖에 안 된 회사지만 엄청난 축복을 받고 있다. 십일조로 매년 7~8억을 낼 정도다. 최철홍 회장은 CH100(현 (주)보람홀딩스)을 설립했지만 급여도 배당금도 받지 않는다. 이 회사의 목적은 도네이션을 통한 교회 개척과 선교 목적의 회사이다.

100교회 개척과 더불어 그에겐 또 다른 꿈이 있다. 바로 동남아에 크리스천 상조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 선교사들이 많이 포진된 동남아는 불교와 회교 등 기타 종교가 샤머니즘과 융합되어 독특한 장례문화들을 형성하고 있다. 한 선교사를 통해 동남아에서 오랜 시간 복음을 전하고 변화시켜도, 죽음 앞에서는 불교식 장례를 치르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동남아 진출을 계획, 현지 시장조사에 한창이다. 

“상조는 우리가 전문가니까요. 동남아 장례와 결혼 문화를 파악하고, 크리스천 상조문화를 전파하자는 생각입니다. 센터를 세워서 추이를 지켜보고, 그곳 선교사 사역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주)보람홀딩스와 연계해서 현지 기독교 지도자를 세우고, 자립선교가 가능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전이 있다. 바로 차세대 기독교 리더를 키우는 일. 엘림주찬양교회에서 청년대학부 성도들에게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고 가르친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전하며 ‘내려놓음’을 강조한다. 보람상조를 중심으로는 ‘사목’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 그의 기업경영 마인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완전히 바뀌어졌다. 

“천억을 주면 뭐합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가시면 끝인데… 물질, 명예 어떤 것도 세상의 것은 부럽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인생을 다시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요. 오늘 따뜻한 물에 샤워할 수 있는 것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 또 감사해요.”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 신앙이 없을 때 그 역시 두려웠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겸손해진 최철홍 회장. 살면서 이루어 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는 그에게 2017년은 새로운 출발선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 내 것은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바라는 것은 남은 생에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끊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남과 같이 해서는 결코 남 이상 될 수가 없다’는 좌우명으로 100개 교회를 열어가기 위해서 나아가겠습니다.” 목사로, 사업가로, 그리고 비즈니스 선교사로 그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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