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된 예배자를 두려워한다
상태바
세상은 참된 예배자를 두려워한다
  • 운영자
  • 승인 2017.08.30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9) 온전한 예배
▲ 이경직 교수(백석대)

하나님은 “너의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며”(출 34:26)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 얻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땅에서 처음 난 것들을 모두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그 땅의 주인이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러해야 주변 민족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땅인 가나안을 감히 공격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1년에 3번 예루살렘에 모일 때마다 주변 민족들은 이스라엘을 더욱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배가 거짓 예배일 때 주변 민족들은 이스라엘을 가볍게 여기고 가나안 땅을 침공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세상은 하나님의 교회를 두려워하고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배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지 않고 교회가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닐 때, 세상은 교회를 가볍게 여기고 공격할 것이다. 그 공격 앞에 교회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다. 교회는 우리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지켜진다.

하나님은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출 34:26)고 명령하신다. 비록 염소 새끼가 그 어미에게서 나온 첫 새끼일지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드러나는 예배이어야 한다. 염소 새끼는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 된다. 염소 새끼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어미의 젖으로 염소 새끼를 삶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이다. 

가나안 민족들은 이런 잔인한 행동을 통해 우상숭배를 하였다. 가나안 민족들은 그들의 신들을 섬긴다는 명분 아래 온갖 잔인한 일을 하였다. 하나님은 그분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그런 모습을 닮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모세는 시내 산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40일 주야를 지내면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출 34:28). 이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40일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하나님의 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우는 시간이었으며, 이후 그의 사역을 준비하시는 시간이었다. 이미 모세는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고 기도했다.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은 그의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보다 귀한 것임을 드러낸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사역을 준비하셨다. 사탄이 세 가지 시험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물리치셨다.

시내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 그가 시내 산 정상에서 하나님과 대화했기 때문이다. 40일 금식을 한 사람의 얼굴이 기름진 음식을 먹은 사람의 얼굴처럼 빛나기란 어렵다. 그러나 열흘 동안 채식하고 물만 먹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였다.”(단 1:15)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단 1:8) 구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의 얼굴은 빛났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더 윤택하게 하신다. 

예수님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다. 영적인 일을 우선할 때에 육적인 일에서도 복을 받는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외적으로도 달라진다. 40일 금식과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으면 그 얼굴이 평화롭고 기쁨이 넘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말에는 진정한 권위가 느껴진다.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할 때는 교회가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고 있을 때이다. 세상은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을 가장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에서 성도들이 예배자로 살아갈 때에 세상은 성도들을 두려워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