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빠진 선수들이 희망의 전도사들로 바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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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빠진 선수들이 희망의 전도사들로 바뀐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08.3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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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사기진작 및 상담 돕는 ‘상무백석교회’

충청도를 넘어 경상도로 들어가는 초입 문경. 물 맑고 공기 좋은 이곳에는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위치해 있다. 2013년 문경으로 이전해 오정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국군체육부대는 50여만 평 규모로 선수들이 오롯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상무부대에서 훈련할 수 있는 종목은 축구, 농구 등 구기종목은 물론 사격, 근대5종, 빙상까지 33개 종목에 이른다.

체육부대 내 유일한 종교시설
이렇게 드넓은 국군체육부대 내 종교시설은 단 하나 뿐이다. 바로 유동표 목사가 시무하는 상무백석교회다. 유 목사는 2001년 부임한 이래 벌써 17년째 국가대표 급 선수들의 신앙과 영성을 책임지고 있다.

상무백석교회(당시 여호수아교회)는 국군체육부대 창설 후 유일한 종교시설로 설립됐다. 그런데 교회에 군종장교의 배정이 제외되면서 17년 전 유동표 목사가 민간 군선교사 자격으로 백석대학교회의 파송을 받아 이곳으로 오게 됐다.

군 선교와 스포츠 선교는 둘 모두 특수 선교 분야에 속한다. 선교를 향한 사명감과 확실한 전문성을 겸비하지 않고는 쉽지 않은 사역이다. 경희대학교(B,A.)와 한국체육대학원(M.A.)을 졸업하고 백석대학교 신대원(Th. D.),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HMP)을 이수한 유 목사는 상무백석교회의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유 목사에게도 가족과 멀리 떨어져야하는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로 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여단급 부대의 영적 영역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고민하던 그에게 넌지시 들려온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다. “목회를 사람이 하나? 하나님이 하시지.”

그 길로 군 스포츠 선교에 헌신한 유동표 목사와 상무백석교회는 이제 국군체육부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고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선수들이 교회를 찾아 위로를 얻고 간다. 부대원들의 사적 문제 해결을 위한 ‘무임변호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유동표 목사는 지난 2012년 10월 4일 군 선교와 체육발전을 위해 힘쓴 공로로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민간인 성직자가 국방부장관의 감사장을 받은 것은 유 목사가 최초다.

감사장에는 “평소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국민이 함께하는 국가안보활동을 행동으로 적극 실천해 오셨으며, 특히 매주 부대 종교 활동 지원과 장병 위로활동으로 국군장병 사기진작과 신앙 전력화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유 목사의 군 선교 사역이 어땠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유동표 목사는 수상 당시 소감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면서 “12년의 사역을 바탕으로 더욱 활발한 군사역을 펼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들을 감당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17년 동안 국가대표급 군인 선수들의 신앙과 삶을 지도하고 있는 유동표 목사(오른쪽)가 일본출신 상무 럭비 코치겸 선수 쇼웨이 시카타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고민 해결되는 병사들의 상담소
흔히들 스포츠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뼈를 깎는 훈련과 역경의 시간을 견뎌내며 겪는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그 과정에서 심적으로 지쳐 쓰러지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는 특히 견디기 힘들다.

이런 선수들을 위해 부대에서는 33년 창설 이래 최초로 2016년 4월 7일 상무 종합상담연구소를 개소해 유동표 목사를 연구소장으로 위촉했다. 자기 얘기를 쉽게 꺼내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데 익숙한 운동선수들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장소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코치들, 부대 내에 상주하는 병사들까지도 위로가 필요할 때면 이곳을 찾는다.

상담소는 부대의 중심인 메인스타디움, 그 중에서도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내부는 평소 상상했던 상담소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국군체육부대를 거쳐간 수많은 선수들이 남긴 기념품과 트로피, 상패들이 진열돼 화려한 모습이었다.

“화려한 기념품과 트로피는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을 위해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훌륭한 선수가 된 선배들도 똑같이 슬럼프를 겪었고 극복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음을 설명해 줍니다. 상담소에서 다시 꿈을 꾸고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거죠.”

상담소의 다른 벽면에는 유 목사와 가족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쪽은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에서 상처를 받은 선수들을 위한 공간이다. 유 목사는 찾아오는 선수들이 겪는 문제에 따라 각각 다른 자리에 앉힌다. 가족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쪽을, 슬럼프를 겪는 이들에게는 트로피가 전시된 쪽을 바라보도록 한다.

선수들의 고민은 비단 운동과 훈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문제부터 가정, 연인, 진로까지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어려서부터 운동에만 집중해온 터라 감정 표현에 서툴고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 상무부대에 상담소가 꼭 필요한 이유다.

“상담연구소에는 절망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요. 운동선수들이 활동적이고 마냥 활발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참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내면은 여리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아요.”

상담소 개소 초기에는 자신이 입대해서 자리를 비운 동안 아버지의 폭행을 못이겨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가 찾아왔다. 달리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이 없었다. 유 목사는 자신의 가정환경을 병사에게 털어놨다. “내가 너를 위해서 16년을 기다렸다”며 함께 울고 기도했다. 지금 그 병사는 온전히 회복돼 병장 계급으로 얼마 안남은 전역을 기다리고 있다.

선수들과 병사들은 병원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상담소로 찾아온다. 특히 요즘 입대하는 장병들은 깨어진 가정이 많다. 부대 내 병사들을 살펴보면 거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다.

그래서 유 목사가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 중 하나가 가정이다. 부대에서 가정의 가치를 회복시키고 다시 돌려보내려 노력한다. 주일 설교도 가정을 주제로 한 메시지가 많다.

“군대는 누구도 오고 싶어 오는 곳은 아니지만 우리교회를 통해 회복돼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곳에서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이 회복되고 신앙 안에서 한번 더 도약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지도자 키워내는 요람
군대는 매년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거쳐 가는 복음의 황금어장이지만 한국교회의 군 선교를 향한 관심은 아직 부족함이 많다. 유동표 목사는 해외선교에 쏟는 관심만큼 군 선교에도 열정을 쏟았으면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통제된 집단인 군대에 있는 만큼 군 선교 사역은 철저한 절제를 요구한다. 계급장을 달고 있지 않은 민간 선교사 신분이기에 사람들의 시선 또한 더 민감할 때가 많다. 부대 내 유일한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타 종교로부터 탄압도 심했다. 그래서 유 목사는 일반 교회에서 사역할 때보다 훨씬 철저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한다고 이야기했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좀 더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17년이란 시간 동안 스스로 절제하며 군인과 같이 살다보니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에는 군대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른 채 내 방식대로 목회했다면 지금은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죠.”

상무백석교회와 유동표 목사의 사역은 날로 부흥하고 있다. 단출한 조립식 건물에서 시작해 이제 부대 정문에 위풍당당하게 선 건물이 교회의 부흥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지난 2015년에는 세계군인체육대회 한국 개최에 맞춰 세계선교대회를 열기도 했다.

상무백석교회는 멋진 예배당을 완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종병이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과 가족들이 청소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모와 두 딸들은(순종, 은종) 주말이면 문경까지 내려와 반주봉사와 방송실 사역을 도맡는다. 축구선수인 아들 로몬은 일본 유학과 프로선수 생활을 거쳐 지금은 코치 겸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서 매주 교회 출석은 어려운 상황이다.

매주 서울을 한차례 이상 왕복하느라 1천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하고 있는 유동표 목사는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전한다. 문경시 특임보좌관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오늘도 군복음화와 함께 문경시 발전을 위해서도 함께 뛰고 있다.

매년 젊은 피가 수혈되고 또 떠나는 군대는 오랜 기간 고정적으로 교회에 헌신하는 성도를 얻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유 목사는 이곳에서 미래 한국을 이끌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내길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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