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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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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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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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모든 것이 생각에서 옵니다

빌립보서 4:14
찬송 413장


생각하기 위해서는 좋은 지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영적 지식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지식을 깊이 묵상하게 되면 명철을 얻게 됩니다.
명철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란 깊이 볼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입니다. 본질을 보고 핵심을 보는 것입니다.  지식과 깨달음이 만날 때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혜는 삶의 기술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입니다. 지혜는 사건을 해석하고 사건에 반응을 보이는 순발력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순식간에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알고 있는 지식을 삶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가꾸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원에 비할 수 있다. 제대로 경작할 수도 있고 멋대로 버려 둘 수도 있다.” 경작하든 버려두든 반드시 뭔가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그 생각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열등의식 좌절감 불안 두려움 가난 불행이 모두 생각에서 옵니다. 우리는 열등의식 핍절의식 실패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독특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창조의식과 그리고 풍부의식과 가능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풍부한 삶을 원한다면 먼저 풍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충만과 풍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므로 지혜롭고 풍성하며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함께 기도하는 교회

사도행전 12:1~6
찬송 336장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교회는 급속도로 안정되고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 운동이 잠시 주춤거렸지만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들에게만 전파되던 복음이 헬라인을 비롯한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었습니다.
그때 또 다시 교회에 핍박이 찾아왔습니다. 사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에 의해 참수를 당했습니다. 여론이 헤롯에게 우호적이자 당시 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베드로까지 체포해 유월절이 지나면 또 죽이려고 했습니다.
교회에 찾아온 절대 위기였습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교회가 달라진 것입니다. 주님이 붙잡힐 때만 해도 그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벌거벗은 채로 도망쳤고, 주님을 모른다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유약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도망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곧,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모두가 ‘간절히’
간절(懇切)함이란 ‘다른 것들로부터 머리를 돌려 굳게 세우고 오직 하나에 집중하는’ 곧, 하나님께만 향하는 애틋함으로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를 묶고 있던 착고가 풀렸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꿈인가 생각하는 베드로를 천사가 독촉하여 감옥을 나왔습니다. 죽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성령 하나님께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여러 난관들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변화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모습과 같게 하옵소서!

고혁성 목사(염광교회)

수요일

교회 올 때의 기쁨

시편 122:1~6
찬송 446장


내가 다니는 교회는 내가 좋은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이런 교회에서 이런 생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면 그런 교회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좋은 교회를 만들어 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에 오면 꿈이 생기고, 비전이 생기고, 소망이 생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망을 두고 일하십니다(빌 2:13).
교회는 우리의 삶에 꿈과 소망을 주기 때문에 교회를 통하여 새로운 소망이 생겨야 합니다. 교회에 올 때에 내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또 교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기뻐야 하고 사람들이 교회를 가자고 할 때도 기뻐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말 중에 ‘은혜 받았다’는 말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은 항상 긍정의 말과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며 죽겠다는 말을 했을 때에 그대로 되었습니다(민 14:26-28).
우리는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죽겠다는 부정의 말과 못 살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형통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당연히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면서 삶의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교회 가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교회를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목양교회)

목요일

영생은 생명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누가복음 10:25~37
찬송 455장


강도를 만나 봉변당한 사람들이 많아서 일까요? 예수님은 피해자에 대해서는 어떤 소개도 하지 않습니다. 입은 옷까지 몽땅 빼앗긴 것과 거반(去般) 죽을 정도로 얻어맞은 것만 말씀합니다. 신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의 입장이 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의식을 잃고 발가벗긴 채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갔습니다. 정결규례에 따르면,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이러한 사람을 도와서는 안 됩니다(레21:1-2,11). 그랬다가는 더 이상 제사와 성전직무를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선택은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척하고,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직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허비하여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두 데나리온 준 것으로 모자라면 돌아올 때 더 주겠다는 말을 주막주인이 받아들일 정도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착한 것 그 이상입니다.
율법학자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라는 두 가지 질문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라는 답을 주신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웃하여 살리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영생은 무엇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냄으로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들의 필요를 돕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염려에서 벗어나라

마태복음 6:25~34
찬송 382장


주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평안할 때는 신자와 불신자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구별이 됩니다. 불신자는 불안해하면서 안절부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바라볼 뿐 아니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로합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하셨습니다. 너희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를 가리킵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삶의 뿌리를 주님께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를 기르십니다. 공중의 새들과 들풀까지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을 보살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마6:26~28).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염려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후 염려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불신앙의 산물입니다. 주님은 내일 일을 오늘 끌어다가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염려에 마음이 눌리면 삶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면 염려에서 해방되고 삶이 밝아집니다. 주님께 염려를 맡김으로 염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염려에서 벗어나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한용준 목사(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부모님을 평안케 하라

에베소서 6:1~3
찬송 559장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1절 a)  부모님의 평안을 위한 자식의 일차적 조건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부모님들은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표준이신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부모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눅2:51, 눅22:42). 그러므로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모 순종은 십계명의 하나로서 하나님의 절대명령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할 때 부모님은 평안하십니다(2절a) 여기서 “공경하라”의 원 뜻은 ‘가치를 높이 평가하다’ 혹은 ‘경의를 표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제의적으로 적용 될 때는 ‘제물을 가지고 섬기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은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3절)입니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뜻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선대하시겠다는 말씀이지만 부모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면 부모님이 평안하시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자식은 부모님의 가슴에 슬픔의 파인 웅덩이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부디 은혜 안에서 형통하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행하는 자를 형통의 복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하신 말씀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부모님을 평안케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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