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희망 결코 놓지 않았던 ‘불굴의 신앙인들’

광복 72주년, 압제 속에서도 불타오른 신앙 이인창 기자l승인2017.08.09l수정2017.08.09 16:03l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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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을 맞이한 지 72년이 됐다. 흑암의 권세와 같은 36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났을 때의 감격은 구원을 얻는 것이었을 것이다. 72년 전 1945년 8월 15일 해방공간 속에는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친일을 한 사람도,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이 같이 있었다. 일제 권력의 앞잡이로 살았던 사람들에게 해방은 공포였겠지만, 그러나 대다수 백성들에게 무한행복을 주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해방 당시 개신교 인구는 전체 대비 5% 안팎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국가 독립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공교회의 신사참배 결의라는 비참한 역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깨우는 교회, 신앙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광복 72주년을 맞아 역사 공간 속 기독교 지도자들은 누가 있었는지 조명해 본다. 

3.1만세운동, 전 인구 1.8% 기독교인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사건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비폭력운동의 모범이 된 사건은 1919년 전국에서 진행된 3·1 만세운동이다. 만세운동은 서울 탑골공원에서 민족 지도자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1919년 당시 전국 인구는 1600만명 정도였지만, 기독교 인구는 2%도 채 되지 않는 1.8% 정도였다. 하지만 고을마다 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상당수 지역에서 거점은 교회였다. 경기도 화성 제암리교회 순교사건 역시 3.1운동 여파였다. 

훗날 변절해 친일파가 된 인물도 있지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 중 무려 16명이나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 역시 교회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에 큰 영향을 준 2.8독립선언을 연결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 김마리아 여사, 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한 이승훈도 개신교인이었다. 

당시 일본 헌병대 자료를 분석하면 3.1운동 이후 3개월 동안의 진압과정에서 7천여 명이 사망하고 1만5천여 명이 상해를 입고, 4만6천여 명이나 구금됐다. 만세시위 주도한 인물의 30%, 체포되거나 투옥 사람의 20%가 기독교인일 정도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이치만 교수는 “기독교는 3.1운동 태동단계부터 확산단계까지 전 과정에 기여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과 비서명자 15명을 합한 48명 가운데서도 22명이 기독교인이었다”면서 “다만 기독교 관련 3.1운동 역사와 인물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는 개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기독교대한감리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가 3.1운동 가담한 기독교인에 대한 전수조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교회연합과 크리스챤아카데미는 북간도 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한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기독교대한감리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 헌병대가 발표한 3.1운동 기독교 가담자 중 1,968명의 명단을 확보한 것이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기독교인에 대한 객관적 연구조사 결과에 대해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세속 속에서나 교회 안에서나 ‘오직 믿음’
3.1운동이 독립운동사에 정점과 같은 역사이지만, 한국교회의 독립운동 명맥은 꾸준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전래돼 그저 외래종교로 치부되던 기독교는 민족의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일본의 침략야욕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 선교사들은 고종을 도왔다. 기독교인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창설해 독립신문을 만들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고, 상동교회를 담임하던 전덕기 목사와 상동청년들은 1905년 을사늑약 무효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교육을 통한 자기혁신과 민족개조를 시도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 역시 신앙인이었으며, 훗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 역시 민족운동을 1910년 이전부터 전개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02년 전도를 받아 신앙인으로 변모하고 독립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했다. 

특히 인상 깊게 기억되는 대표적 신앙인의 한 사람은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명동 전국YWCA연합회 건물 앞 이회영 선생 생가 터에서 기념하는 비를 볼 수 있다. 
우당 이회영은 부친이 이조판서를 지낼 정도로 한성부 명문가에서 출생했다. 6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우당은 일찍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감리교인이 됐고, 모든 노비들을 면천해 주었다. 무엇보다 국난이 닥쳤을 때 이회영 6형제가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금도 큰 감동을 주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이회영은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전 재산을 처분해 모든 가족과 함께 중국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처분 재산은 지금으로 치면 2조원대에 이른다. 이회영 집안의 재산으로 항일무력투쟁의 본산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됐다. 

정작 이회영 개인은 늘 굶주리고 질병에 시달리는 고난의 연속의 삶이었다. 중국 전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그는 결국 1932년 일제에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이회영을 포함한 다른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 중 사망하고, 1945년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이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된 이시영 단 한 명이었다. 

한편,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광복 72주년을 기념해 우당 이회영 6형제의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민국의 길, 자유의 길’ 기획전을 10월 15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의 생애가 궁금하다면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신사참배’ 오욕, 해방 후 미완의 과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로 한국교회가 잊지 말아야할 역사가 ‘신사참배’ 결의이다.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는 “신사는 종교가 아니고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애국적 국가의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다.

일본이 식민지 문제는 모두 일소됐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신사참배를 회개할지언정 믿음을 저버렸던 가슴 아픈 역사는 반드시 기억해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각오했던 기독교 지도자들도 기억돼야 한다.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외에도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살았던 신앙선배들은 72년이 지나도 기억해야 할 사명이 후손들에게 있다. 

연세대 한국기독교연구소 최재건 교수는 “신사참배는 한국교회의 수치였지만 순교를 감수하며 반대투쟁을 벌인 것은 한국교회의 영광이다. 이는 천황숭배 사상에 대한 승리이자 일본제국의 위세를 멸시한 애국혼의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안타까운 것은 8.15 해방 이후 외세의 의해 분단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결국 뜻을 모으지 못한 것은 아쉬운 역사로 남았다. 

특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 몽양 여운형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우사 김규식 선생 등 당시대 내로라하는 신앙을 가진 민족 지도자들이 뜻을 모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분단의 역사가 이토록 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광복 72주년은 안타깝게도 분단 72년의 역사이다. 기쁨과 아쉬움이 공존해야 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끊어야 하는데 지금 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다.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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