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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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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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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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57)

프랑스 파리에 가면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의 다른 이름은  미테랑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그 나라의 국력과 국격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특별히 국격은 문화의 수준과 국민의 지적수준이며 이것을 가늠하는 것이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격언이 있다. 

미테랑 도서관은 프랑스 국민들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그 규모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전설적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계승한다는 마음으로 1998년 지어진 도서관은 장서만도 3천500만권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 반환된 우리나라 ‘외 규장각 도서’도 여기에 소장되어 있었다. 가히 인간의 지적 열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은 규모이며 크기로는 책을 펼친 듯한 현대식 고층빌딩 네 개 동을 세워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도서관의 본질에 충실하듯 자료의 수집과 보존은 물론 지적 소통이란 문제와 문화복합의 공간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더 넓게 더 깊게’ 라는 표어는 지식의 정원으로 소통에 대한 그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 방효성-변증법해부도

건축에 들어간 돈은 2억 유로이며 우리 돈으로 1조2000억원이 소요됐다. 프랑수아 미테랑(1910~1996)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1981~1995) 1987년 7월13일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기존의 국립도서관을 크게 지어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당 좌파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으로 그러한 발상에 말도 많았다. 막대한 건축비 부담도 있었고, 주변에 에펠탑등 환경과 미관을 해친다는 여론도 높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나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오늘의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 내일의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미래를 생각하는 인간에게는 언제까지나 미래가 있다”라고 말했다. 건축은 ‘도미니끄 페로’라는 당시 35세 젊은 건축가에게 건축을 맡겼다. 도미니끄 페로는 이화여자대학교 복합공간을 설계한 분으로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미테랑 대통령 이후 차기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 ‘자크 시라크’였다. 미테랑 정권에서 함께 일을 하였지만 중도 우파인 자크 시라크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좌우 이념이 달랐다. 그러나 후임 시락크 대통령은 도서관 건축을 훌륭하게 마무리 했으며 국립도서관의 명칭을 미테랑 도서관으로 명명했다.

며칠 전 뉴스 화면 아래 자막으로 지나가는 글을 보았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100주년 기념우표발행 취소’라는 글이었다. 동시에 미테랑 대통령 도서관과 비교가 되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이런 멋진 아량과 포용을 하지 못할까. 서로 다름이 미움이 되어 우리의 시선이 왜곡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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