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피서지에서 신앙 선배들의 흔적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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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피서지에서 신앙 선배들의 흔적 찾아봐요!”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7.07.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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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유적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휴가의 계절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무더위를 벗어나 가족,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저마다 국내 또는 해외로 휴양지를 정하고 알찬 휴가 계획을 세운다. 지도를 펼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근 맛집, 구경할 거리 등을 찾으면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지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휴가 기간에 의미 있는 시간을 더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연과 함께 순례자의 길을 걷고, 마을 곳곳에 숨겨진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며, 순교자의 역사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흔적들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신앙 선배들이 믿음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힘썼는지 엿볼 수 있다. 또 믿음의 흔적들을 만나면서 좀 더 뜻깊은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기독교 영성센터 필그림하우스에서 자연이 주는 고요함과 평안함을 만끽하는 건 어떨까. (사진출처:필그림하우스)

자연 속에서 쉼을 찾다, 필그림하우스
휴가 기간, 먼 곳까지 이동하기 어렵고 서울 근교에서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경기도 가평을 추천한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지하철로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경기도 가평’에는 주요명소들이 많다. 사계절 풍경이 색다른 남이섬, 낚시와 수상스키로 유명한 청평호수 등 가평에는 다양한 즐길거리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이런 명소 사이에 위치한 기독교 영성센터 필그림하우스 역시 자연이 주는 고요함과 평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다. ‘순례자의 집’이라고 불리는 필그림하우스는 명지산과 연인산, 그리고 용추 계곡 사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산이 주는 맑은 공기와, 계곡이 들려주는 물소리가 몸과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자연의 중심에 있는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필그림하우스에서 머물면서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창조의 놀라움과,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자연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필그림하우스 인근에 마련된 산책로, ‘천로역정 순례길’은 그리스도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체험을 통해 깨닫게 해준다. 그리스도인이 순례의 길을 떠나기 전 살았던 멸망의 도시에서 죄인들의 모습을 시작으로, 좁은 문을 지나 마귀의 시험 과정과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십자가에서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기쁨의 산을 지나다 보면 천성에 다다르게 된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형성된 순례길을 완주하고 천성 코스에 도착할 때 느끼는 기분은 일생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마치고 천국에 도달한 성도의 기분을 미약하게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필그림하우스 대표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순례자이며, 순례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식”이라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속에 있는 필그림하우스에서 쉼을 얻고, 천국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 'ㄱ'자 예배당으로 알려진 김제금산교회는 기독교가 지닌 서양의 문화가 한국 유교 문화와 어떻게 어울지게 됐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다. (사진출처:한국기독교회사)

전통과 기독교를 어우른 김제 금산교회
기독교가 막 대한민국 땅에 들어왔을 때는 유교문화가 널리 퍼져있던 시기다. 또한 유교 사상 중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문화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교회처럼 남녀가 예배당 안에서 한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라북도 중서부에 있는 김제에는 유교 문화가 가득했던 한국 땅에 기독교가 어떻게 토착화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가 있다. ‘ㄱ’자 예배당으로 유명한 김제금산교회는 기독교가 지닌 서양의 문화가 한국 유교 문화와 어떻게 어우러지게 됐는지 보여준다. 

1908년 세워진 금산교회는 미국 남 장로교 테이트(L. B. Tate, 한국이름 최의덕) 선교사의 전도로 세워지게 됐다. 당시 테이트 선교사는 말을 타고 전주와 정읍을 오가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다니다가,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김제 금산리에 머물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렇게 퍼진 복음은 마을의 유지였던 조덕삼과 박화서, 왕순칠, 강평국, 이자익 등에게 전파됐고, 이들은 예수를 믿고 금산교회를 세웠다. 

이들은 당시 유교 문화에 물들어있었기 때문에 ‘남녀칠세부동석’을 어기고 예배당을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남자석과 여자석을 따로 구분지은 ‘ㄱ’자 예배당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기와집 형태의 금산교회 예배당 안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예배당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ㄱ’자 모양의 예배당은 남자와 여자가 구분지어 앉고, 맨 앞줄 쪽에 앉지 않는다면 상대방 쪽 자리를 쉽게 볼 수도 없도록 되어있다. 

금산교회는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1997년 10월 전북 문화제 제 136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끌어안기도 했다. 만약 전라도 쪽으로 휴가 계획을 세웠다면, 피서지에 가기 전에 잠시 김제 금산교회에 방문해 예배당에 앉아 교회를 설립한 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몸소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천안에 위치한 병천매봉교회. 교회 옆에는 유관순 생가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고난 속 나라 사랑 꽃피운 병천매봉교회
휴가기간을 맞이해 기독교 선조들의 애국심을 느끼고 싶다면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병천매봉교회를 방문해보자. 그곳에 가면 나라를 사랑한 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매봉교회가 위치한 병천의 옛 지명은 지령리이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순 우리말인 ‘아우내’라고 불렀다. 마을을 둘러싼 산의 물이 흘러 이곳에 모인다는 뜻처럼, 아우내는 여러 선교사들이 이 마을에 모여 복음을 전하며 부흥을 일으킨 동네다. 

1899년 스웨러 선교사의 방문을 시작으로 샤프 선교사, 사애리사 부인 등이 차례로 이 마을을 방문해 매봉교회를 세우고 선교 활동을 펼쳤으며, 이후 박해숙 전도사가 교회 부흥에 크게 힘을 보탰다. 

우리는 ‘아우내’하면 쉽게 유관순을 떠올릴 수 있다.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유관순이 매봉교회 교인들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곳이 바로 천안 아우내 장터다. 유관순이 나라를 위해 일제의 압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영향이 컸다.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05년과 1907년, 이미 일본 군인들은 두 번이나 매봉교회를 탄압하며 불을 질렀다. 당시 교회는 을사의병이 일어났을 때 이들을 뒤에서 도왔으며, 국채보상운동으로 나라가 진 빚을 갚고자 할 때도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매봉교회는 일본 군인들에게 교회를 잃는 슬픔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교회를 세웠다. 교회를 재건축하는데 앞장선 이들 중 한명이 바로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씨다. 이처럼 성도들의 나라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고, 그들의 사랑은 유관순과 매봉교회 교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의 관계자는 “매봉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라와 민족 사랑으로 알고, 몸으로 그 사랑을 실천한, 살아있는 민족교회였다”며 “유관순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모든 이들은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만세운동 이후 일본 군인은 또 다시 매봉교회를 불태우고 집회금지령까지 내려져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해방 이후인 1967년, 이화여고는 유관순을 기념하기 위해 유관순 기념교회를 세우고 매봉교회라 불렀고, 그 옆에는 유관순의 생가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선조들의 신앙을 느꼈다면, 이제 근처의 맛집과 온천 등을 방문해 몸의 고단함을 덜어내보자. 천안 병천의 유명한 음식 순대로 허기를 채우고,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에 몸을 담근다면 피로가 싹 풀리며 알찬 휴가를 보낸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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