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 당신, 지금 삐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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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 당신, 지금 삐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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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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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 16

*열왕기상 21:4~7>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는 아합, Thomas Matthews Rooke, 1879년.

요즘 사람들에게 새롭게 생긴 마음의 병 중 하나가 ‘섭섭함’이며, 이 말을 좀 더 현실감있게 표현한다면 “삐짐병”이고, 좀더 확장하면 ‘거절감을 견디지 못하는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한 삐짐병은 거의 전염병처럼 이미 널리 퍼졌고, 그 증세는 대부분 중증이다. ‘내 문자에 답을 안 해?’ ‘내 톡을 아직도 안 열어봤어?’ ‘내 글(온갖 SNS)에 좋아요를 안 해?’  ‘내 사진을 보고도 반응이 없어?’


빨리, 되도록 빨리, 열렬하게, 내 편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도록, 호의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게다가 나를 부러워한다면 더 좋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화제의 주인공이 된다면 말 할 것도 없고! - 이런 식으로 반응해주길 원한다. 

스마트폰의 경우만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래, 그래! 네가 하고 싶다면, 네가 원한다면, 네가 울지만 않는다면, 내가 다른 집 애들보다 나아 보인다면!’ 이라는 부모의 사랑 속에 자라온 지금의 세대는 거절감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날마다 끔찍한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이다.

‘내가 널 사랑하는데 거절을 해?’ ‘내가 하고 싶다는 데 막아?’ ‘내가 싫다는 데 억지로 시켜?’ ‘내가 취하고 놀고 싶다는데 방해를 해?’ ‘내가 운전하고 있는데 내 앞에서 얼쩡거려?’ - 이런 분노 속에서 폭행과 살인이 주저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상대방의 반응과 상대방의 거절에 전전긍긍한다. 

아합은 어쩌면 현대판 ‘섭섭증’ 환자, 또는 ‘삐짐병’의 왕자, ‘거절감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는 환자’인지도 모른다. 아합은 사실 그렇게 포악하고 악질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은 아닌 듯 하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나봇의 포도원을 향해 칼을 들고 말을 달렸을 거다.

하지만 그는 나봇에게 정식으로 제안, 그러니까 거래를 제시한다.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기원전 시대에 한 나라의 왕이 이 정도라면 결코 잔인한 기질의 왕은 아니다. 극히 정당하게 요구한 것이다. 요즘 말로 신사적인 제안을 했다. 어쩌면 나봇도 왕의 요구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허락했을지도 모른다. 조건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봇이 대답했다.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나봇도 왕이 그렇게도 원하니 거래를 하고 싶지만,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합은 더 협상도 못한 채 왕궁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는데 어찌하랴! 하지만 아합은 하나님의 뜻이 그런 줄은 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아이처럼 ‘마음이 무너져서’ 왕궁에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뱃속 태아처럼 옆으로 누워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밥도 먹지 않았다.’ 이것은 삐진 아이들이 하는 3단계를 그대로 밟은 것이다. 엄마가 말을 해도 못 들은 척 제 방에 들어와 침대에 옆으로 휙 돌아누워서, 밥 먹으라고 해도 ‘안 먹어!’ 라고 소리치는 아이!

그런데 문제는 이세벨은 아합을 위한답시고(사실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봇의 피로 땅 속을 깊이 깊이 적시는 악을 저지른다.  

한 사람의 욕망의 삐짐이 죄없는 사람의 생명을 짓밟고 그 삐짐이 풀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이유와 사람 관계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남 모르게 마음 한편이 삐진 우리들. 우리들도 혹시 누구의 생명을 밟고서라도 그 삐짐을 해결하려는 악은 혹시 없는지 냉정하게 늘 자신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함께기도>>>하나님! ‘이해한 척’ ‘착한 척’ ‘늘 기도하는 사람인 척’ ‘그 정도 일에는 상처 안 받은 척’ ‘세상 것에 관심없는 척’ 웃어넘기면서 사실은 교묘하게 삐져 있는 우리의 졸렬함을 다스려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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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 2017-08-04 12:23:24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 16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