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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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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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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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 / 흰돌교회

종교개혁500주년을 기념하는 명제 아래 얼마 전 유럽을 성지순례 차 다녀왔다. 파리의 그 유명한 에펠탑을 오르니 그야말로 파리 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가 있어 너무 좋았다. 인간의 지혜와 기술로 만들어진 스마트폰으로 시가지 전경을 담아내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아니, 근데 에펠탑은 어디 있는 거지? 왜 안 보이지?” 동료들이 옆에 있다가 아연실색하며 박장대소를 한다. “이 목사, 벌써 치매 걸렸어요? 지금 서 있는 곳이 에펠탑이잖아!” 

이런 나의 증상은 바티칸에서도 한 번 더 재현됐다. 언젠가 로마, 아니 바티칸은 한 번 가보았으면 했다. 도대체가 어떤 도시인지, 어떤 성당이 자리하고 있기에 하루에도 수만명이 서로 밀고 밀려가면서 관광을 하는 곳인지가 궁금했다. 그 바티칸을 찾아 들었고, 세계 최대의 베드로성당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정말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서 갔다. 조금이라도 멈춰 서서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한다는 것은 야무진 꿈에 불과했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 일행을 놓치면 국제 미아(?)가 된다니 안내하는 가이드의 깃발에만 정신이 꽂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 깃발만 바라보듯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더라면, 이미 살아있는 성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성당건물 안을 빠져 나와서 내가 던진 말 “근데 베드로성당은 어디 있죠?” 에펠탑에 이어 또 한 번 정신 나간 소리를 하니 동행한 목회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치매환자를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베드로성당은 내게는 그저 하나의 대형건물에 불과했다. 외형은 세계 최대라고 자랑하지만 그냥 여느 박물관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성당 안에는 역사적인 작품이라 일컫는 온갖 조각상들과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가득했고, 놀라운 것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각종 신들의 형상이 성당 안으로 들어와 버티고 있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무슨 큰 전시관이라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광장 한복판에는 고대이집트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어졌다는 그 유명한 조각물이다.

베드로 대성당 안에서 예수님은 정녕 어디에 계실까? 아니 바티칸제국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며 누굴 만나고 계시는 걸까? 성당 주변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는 나그네들의 눈물겨운 구걸이 끊이지 않고, 조악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사달라고 애원하는 아픈 인생들의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혹시 우리의 주님은 그 곳에서 가난한 자들을 만나고 계시는 건 아닐까? 문득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시던 장면이 생각났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어도 주님이 찾지 않으시면 대성당, 대교회는 그 의미가 없다. 화려한 건물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오늘 우리 주변엔 개척교회나, 임대교회 목회자들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며 어려운 목회를 하고 있다. 시골 오지나 섬마을 등에서 몇 사람 앉혀놓고 평생을 버티며 목회하는 동역자들도 너무 많다. 바라기는 힘들게 목회하는 우리의 동역자들이 우울해하거나 대형화되어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난한 동네 베다니를 즐겨 찾으셨던 우리의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가난한 동네, 혹은 어렵게 목회하는 곳을 찾아 위로해 주실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세상에서 무명한 자여도 좋다. 가난한 교회, 가난한 목회자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주님이 머무시는 교회이면 그것으로 족하자. 주님의 삶을 닮아가지 못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확인되면 그 때 우리는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자.

얼마 전 농어촌목회자부부수련회가 있었다. 마지막 날, 서로의 가슴을 들여다보는 짧은 시간, 무려 1년 6개월 동안 교인 하나 없이 예배를 드려 온 개척교회 목회자가 당당하게 간증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나온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우리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노라고!

세계 최대의 베드로성당을 자랑스럽게 품고 있는 종교의 도시 바티칸과 영원한 이별의 인사를 하고 싶다. 굿바이 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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