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또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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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또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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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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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미술 간파하기 (54)

우리 사회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가난에 찌든 삶일 지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서 그 고리를 끊으려고 먹을 것을 아끼고, 약 한 첩 쓰지 못하며 통증을 참아냈던 부모의 희생이 있었다. 그 뜻을 받들어 주경야독하던 자식이 있었다. 때로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자식을 공부시키지 못하는 집에서는, 대도시로 나가 공부하려고, 야반도주하는 자식도 있었다. 이는 모두 사람은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확신에 찬 실천 이었다.

허나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이들로부터 따돌림 당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마치 아저씨가 경험한 것처럼 말하느냐고 외계인 취급한다. 사람은 노력으로는 될 수 없다며 흙 수저, 금 수저 타령을 해야 대화에 낄 수 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타고난 환경을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인 것이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의식이 이처럼 딱딱하고 무섭게 변했다. 이 모든 것,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우리 부모들의 잘못도 크다. 

필자는 약 3년 동안 시편과 잠언, 전도서를 작정한 대로 그려왔다. 소개하는 작품은 그중 전도서 6장 7절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를 드로잉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만족할 줄 아는 이들이 많고, 이웃을 위하여 나누고 베푸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 중에 간혹, 자신의 식욕이 차지 않아 끝없이 긁어모으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상식이란 유전인자가 아예 없다. 이른 바 신종 스크루지, 신흥 완장이다. 게다가 이들이 하는 행동이 가관이다. 이들이 하는 행동을 우리는 ‘갑 질’이라 칭한다. 

▲ 허진권, 오늘의 드로잉, 34 x 25cm, 종이에 연필, 2017

지금 이 시간에도 갑 질 하는 이들, 그들의 2세, 3세들에게 대물림된 ‘또 갑 질’을 보며 희망을 포기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우리들은 이 젊은이들이 운명론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우리는 젊은이들을 운명론이란 사탄의 집에서 건져내야 만 한다.  어쩌면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명령인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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