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상태바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 운영자
  • 승인 2017.07.12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3) 돌판과 나무 궤
▲ 이경직 교수(백석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아담의 마음 판에 새기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 2:16-17)는 말씀이 아담에게 직접 주어졌다.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분의 말씀을 돌판에 쓰신다. 예수님은 거듭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히 8:10)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겠다”(출 34:1; 신 10:2)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예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다. 모세도 분노해서 십계명 돌판을 깨드렸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우리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 마음이 깨어져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 판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준비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다시 새겨주신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이다.”(고후 3:3)

하나님은 모세가 “나무궤 하나를 만들고”(신 10:1) “돌판을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 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라”(출 34:2)고 명령하셨다. 십계명 돌판을 깬 모세는 새로운 두 돌판을 다듬기 위해 아침에 되기까지 밤새 일해야 했다. 돌판이 만들어진 아침에 그는 휴식도 없이 높은 시내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하나님께 그 돌판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모세는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갔다.”(출 34:4)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다시 그분의 언약을 돌판에 새겨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어떤 명령이라도 순종해야 했다.

아브라함도 귀하게 얻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갔다.”(창 22:3) 모세처럼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때 지체 없이 순종해야 한다.
모세는 두 돌판을 담을 궤를 조각목, 즉 아카시아(싯딤) 나무로 만들었다(신 10:3). 이 나무는 견고하여 결코 썩지 않는 나무로서 성막과 성막 기물을 만드는데 구별되어 사용되었기에(출 25:10, 23) 일반 가옥이나 기물의 재료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은 그분이 다시 만드실 십계명 돌판이 깨어지지 않도록 나무 궤 속에 보존하시고자 하신다. 나무 궤는 십계명이 깨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존되어야 할 대상임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 이후에도 거듭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십계명 돌판을 나무 궤에 보관하심으로써 그분의 신실하신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십계명 돌판이 담긴 언약궤를 사람들이 만지지도 못하게 하셨다. 궤에 꿰어진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궤를 움직이게 하셨다(민 4:15).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올 때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웃사가 법궤를 만졌다가 죽임을 당했다(삼하 6: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를 보고 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 돌판을 던져 부수어 버렸다.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십계명 돌판을 사람이 만지는 일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모세의 행동과 같은 일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비록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을 때 레바논의 백향목 나무를 사용했지만, 하나님은 나무가 많지 않은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십계명 돌판을 담을 궤의 재료로 삼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은 외적으로 볼 때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보존하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아카시아 나무처럼 귀하지 않은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면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 그 궤는 십계명 돌판과 더불어 민수기가 기록되던 시기까지 있었다(민 10:5).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께 거듭 불순종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을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