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들의 토론을 통해 배우는 토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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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들의 토론을 통해 배우는 토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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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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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탈무드-1

유대인들이 그들의 자녀를 교육하는데 사용하는 ‘제1 교과서’는 ‘성경’이고 ‘제2 교과서’는 ‘탈무드’이다. 오늘은 그들이 2세를 교육하는데 사용하는 제2 교과서인 탈무드를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려한다. 먼저 ‘탈무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탈무드가 무엇인지 알아보려한다. 

탈무드는 할라카와 아가다를 모아놓은 모음집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 된 미쉬나 부분과 대부분이 아람어로 기록 된 게마라 부분으로 탈무드는 나누어진다. 그런데 탈무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이스라엘 회당의 랍비들의 대화를 담은 예루살렘 탈무드인데, 이를 팔레스타인 탈무드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유다 멸망 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회당을 만들고 그곳에서 토라를 연구하던 랍비들의 토론과 가르침과 교훈을 담은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있다. 

그런데 탈무드는 분량이 아주 많다. 성경은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편집하여 출판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현대 인쇄술이 발달할수록 성경은 더 얇게, 더 간편하게 소지할 수 있도록 편집하여 출판한다. 그러나 탈무드는 편집하는 사람에 따라 최소 열두 권에서부터 최대 40권에 이르는 방대한 볼륨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탈무드는 인생사 삶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와 폭 넓은 가르침과 상상할 수 없는 교훈과 지혜를 담고 있기에 백과사전의 한 종류처럼 보인다. 

다행히 이 방대한 탈무드는 약 1,500년 전에 책으로 편집되어 완성되었다. 그러나 탈무드에 등장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이 만나는 교사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탈무드는 교사들의 삶 가운데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탈무드에 등장하는 위대한 교사들 가운데, 그 시대에 귀한 가르침을 남긴 랍비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고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지 찾아, 그것을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구와 어떤 일을 할 때, 서로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의견충돌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와 영원히 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친구로서 친하게 지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계속하여 친한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느 단체나 나라의 지도자들 또한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와 견해의 차이를 가질 수도 있다. 아마 탈무드의 랍비들도 그랬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가 탈무드의 한 페이지로 들어가, 탈무드를 읽는다면 두 랍비가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자주 읽게 될 것이다. 탈무드는 이러한 논쟁을 빠짐없이 기록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견해를 내 놓으며 논쟁을 벌인 랍비들이 서로서로를 어떻게 대하며 지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게마라에 나오는 흥미 있는 글을 선택하여 읽어보자. 

어느 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에게 찾아와 유대교에 관하여 질문을 하고, 랍비는 그 질문에 대답한 이야기이다. 먼저 랍비를 찾아온 이방인이 랍비에게 물었다. “내가 한 발로 서있는 동안 내게 토라 전체를 가르칠 수 있다면, 나는 유대교를 믿겠습니다.” 샴마이는 매우 언짢아하면서 대답 대신 그 이방인을 쫓아내었다. 그러자 그 이방인은 힐렐을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힐렐은 화를 내지도, 그를 쫓아내지도 않았다. 힐렐은 그 이방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그의 눈높이에서 유대교를 한 마디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였다. “당신이 당하기 싫은 일은 당신의 이웃에게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유대교의 가르침의 전부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이방인은 유대교를 믿었다. 그래서 힐렐은 그에게 유대교와 토라를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힐렐과 샴마이는 미쉬나 시대를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두 사람 모두 토라학당을 인도하였는데, 힐렐은 ‘힐렐의 집’이라는 뜻의 ‘베이트 힐렐’ 학당을, 샴마이는 ‘샴마이의 집’이라는 ‘베이트 샴마이’ 학당을 인도하였다. 이들 두 학당의 토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힐렐과 샴마이, 그리고 힐렐의 제자들과 샴마이의 제자들 간의 토론은 후세대들에게 이상적인 토론의 ‘롤 모델’로서 ‘게마라’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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