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거두는 것이 아닌 심는 것" 아르헨티나에 희망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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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거두는 것이 아닌 심는 것" 아르헨티나에 희망을 심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07.05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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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기아대책 남미 선교현장을 가다(하)

빈민촌 부모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CDP 센터에서 시야 넓히자 꿈과 비전 달라져
사역 노하우 전하는 선교사, 이어받는 지역교회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벗어난 지 한 시간이 채 안돼 라플라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부에노스아이레스와는 달리 라플라타 외곽지역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마을에는 언제 버려졌는지 가늠조차 안되는 몰골의 폐차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집 앞에는 마리아 숭배를 위한 조형들, 심지어 사탄 숭배를 위한 조형물들까지 눈에 띄었다.

1999년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병기·이정선 기대봉사단은 이곳 라플라타에서 빈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CDP(아동개발프로그램) 사역을 펼치고 있다. CDP 센터로 활용되는 감사공동체(교회)에는 기아대책에서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곳으로 찾아온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교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족한 과목 보충수업으로 시작해 재밌는 놀이와 성경공부로 이어진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점심과 간식까지 제공되니 아이들을 두고 일터에 나가는 부모들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공간이다.

아르헨티나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실시되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찾긴 힘들다. 학생들의 30% 이상이 읽고 쓸 줄 모르고 4칙 연산을 못하는 아이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남미 대부분이 그렇듯 이곳의 여자 아이들도 열넷, 열다섯 정도에 아기를 낳는다. 도심을 벗어난 라플라타 외곽지역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부모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보니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장래희망으로 경찰이나 축구선수를 말한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축구의 인기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찰을 꿈꾼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병기 기대봉사단은 “빈민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보는 것이 마약과 총기사건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범죄자들을 잡는 경찰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사망사고가 잦다보니 경찰 채용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빈민촌 아이들에게도 열려있는 점 또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가난 그 자체도 문제지만 가난을 돌파할 동기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눈에 보이는 미래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모들의 직업이 전부였다. 대학은 들어보기도 힘든 꿈만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 아이들도 CDP를 거치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꿈과 비전은 생각조차 못했던 아이들이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기대봉사단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력했다. 최대한 지원해줄 테니 대학에 도전해보라고 다독였다. 아이들이 갑자기 180도 변한 것은 아니지만 달라진 시선을 마주할 때 소망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지역교회와 함께 하는 사역
이병기·이정선 기대봉사단 부부의 사역은 지역교회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라플라타 감사공동체 엘리야 목사와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CDP 사역장소를 물색하던 이 기대봉사단은 아르헨티나에서 사역하고 있던 젊은 한인 목회자 부부로부터 엘리야 목사를 소개받았다. 둘은 서로 같은 뜻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됐고 함께 CDP 센터를 시작했다.

이곳의 CDP 센터는 교회의 전적인 협력으로 추가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CDP 센터장을 맡은 감사공동체 부목회자 오마르 목사를 시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15명의 교사들도 모두 현지인 성도들이다. 이들은 방과 후 교실에서부터 아이들 심방에 이르기까지 사역 전반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이병기 기대봉사단은 “현지 교회를 중심으로 사역이 너무 잘 정착돼 감사하다. 지금 당장 우리 부부가 없어도 센터 사역에 무리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라플라타의 CDP 센터는 2021년 후원이 종료돼 현지 교회에서 사역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기아대책의 CDP 센터는 교회와 지역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었다. 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주일학교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150여 명의 아이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운다.

감사공동체의 엘리야 목사는 “이제 우리 교회는 CDP 사역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곳에서 배우고 훈련받은 아이들이 자라 교회의 주축이 되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길 소망한다”는 기대를 전했다.

아버지가 자주 바뀌는 환경에서 성장한 이곳의 아이들은 어디에도 소속감을 갖지 못했다. 이들을 위해 교회와 CDP 센터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다.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Comunidad)라고 이름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감사공동체는 지역사회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공동체는 토요일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거리마다 쓰레기통을 놔두고 무질서했던 마을에 표지판을 설치했다.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과 지역사회를 섬기는 공동체를 보며 부모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를 CDP 센터에 보냈던 부모들은 이제 자신도 교회에 나와 상담을 받고 함께 공부한다. 기대봉사단 부부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매년 6월 22일 교회에서 ‘아버지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처음에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이유없이 사랑을 베푸는 한국인을 낯설어했다. 하지만 이제 어색했던 한국인부부는 아이들에게 부모이자 스승이자 형제다.

이병기 기대봉사단은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고 챙겨주는 곳이 교회밖에 없다”며 “가난하고 소망이 없고 비전을 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교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이들의 사역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18년 전 아르헨티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인 교회 목회자로 시작했다. 하지만 교회 재산을 탐낸 장로의 모함과 소송으로 5년이 넘는 시간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렇게 심신이 지쳐가던 중 하나님은 기아대책의 사역과 만나게 하셨다. 이후 부부의 사역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아르헨티나 사역은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이병기 기대봉사단은 이제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아르헨티나에 쏟아 놓고 있다.

그는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의 역할은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는 거두는 사역이 아닌 심는 사역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평온함으로 가득했다.

이어 “라플라타보다 형편이 어려운 낄메스 지역에도 CDP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우리 부부의 사역이 아르헨티나 아이들을 위한 한 알의 밀알로 심겨지도록 기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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