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가정, 방치된 아이들…‘떡과 복음’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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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가정, 방치된 아이들…‘떡과 복음’이 희망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06.28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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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기아대책 남미 선교현장을 가다 (상)
▲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시내 전경.

아담하게 꾸며진 교실에 열댓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오초뽀르 운오 오초(8×1=8)!, 오초뽀르 도스 디에스 세이스(8×2=16)!” 기껏해야 10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구구단을 왼다. 옷은 남루하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 빛난다. 파라과이 소망(에스페란자)학교 방과 후 교실에 참석한 학생들이다.

지난 6월 3일, 기아대책 전응림 부회장과 대신 총회 이종승 총회장, 이경욱 사무총장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 있는 소망학교를 찾았다. 마침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방과 후 교실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김정진(60)·김은자(53) 기아대책(기대) 봉사단은 이곳에서 학업에 뒤쳐진 아이들을 가르친다. 개중에는 5~6학년이 될 때까지 글자조차 몰랐던 아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게으름을 탓하기는 이르다. 파라과이에는 유독 방치된 아이들이 많다. 여자아이는 13세만 되도 아기를 가졌고 남자는 무책임하게 떠났다. 엉겁결에 엄마가 된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남자를 찾았다. 그게 아니면 엄마 자신이 일터로 나가야 했다. 되풀이되는 악순환 속에 자녀들은 무책임하게 내던져졌다.

글자를 모르니 학교에 가도 공부가 흥미로울 턱이 없다. 방향을 잃은 아이들은 마약과 범죄에 빠졌다. 김정진 기대봉사단은 바로 이런 아이들에게 주목했다.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었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떡과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전할 수 있는 길은 학교였어요.”

소명을 갖고 시작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김 봉사단은 “기도하며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부딪혔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망과 에벤에셀, 두 학교가 세워졌다.

▲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서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연하다.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 볼 수 있도록
김정진 봉사단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규 교육시간이 부족하다면 방과 후 교실을 활용해 글자와 구구단을 익히도록 돕는다. 기초를 완벽하게 학습하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논의 중인 기초학력보장제를 앞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글자를 알고 나서야 공부에 흥미를 붙이고 공부에 흥미를 붙이면 자연스레 범죄와 마약과 멀어진다. 교육을 통해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소망학교 방과 후 교실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 7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대부분 아동개발프로그램(CDP)을 통해 일대일 결연을 맺은 아이들이다. 학교는 이들을 위해 글자와 수학, 컴퓨터 반을 마련했다.

나무의자에 걸터앉은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의욕이 넘쳤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빈민가를 떠돌며 마약의 유혹을 받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현장을 찾은 기아대책 전응림 부회장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여러분들을 보니 자랑스럽고 기특하다”면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곳의 기대봉사단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방과 후 교실에서 배운 아이들은 놀라보게 달라졌다. 한 달 정도 가르치자 각자 반에서 1등을 한 아이들이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는 학교 성적을 넘어 삶에서 나타났다.

움막에 살며 학비도 내지 못하던 페르난도는 김정진 기대봉사단을 만나고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페르난도에게 교회 기숙사를 내어주고 학교에 다니게 했다. 이제 페르난도는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어엿한 회계사로 일한다. 주일마다 인디언교회에서 봉사하며 만난 자매와 결혼에도 골인했다.

기아대책의 사역은 단순히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물질로 돕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대봉사단뿐 아니라 지역의 교회와 가정,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아이들을 책임지고 양육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그래서 그 지역을 외부 도움이 필요없는 건강한 공동체로 자립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른바 VOC(Vision of Community) 프로젝트다.

김정진 기대봉사단은 지난 2014년부터 성경적 부모교실을 시작했다. 가정이 바로서야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고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문제아 뒤에는 문제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가장 작지만 가장 중요한 공동체인 가정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한다”고 말했다.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성경적 부모교실은 지역사회의 반응이 뜨겁다. 여태껏 몰랐던 가정의 역할과 성경적 부모관을 알게 된 부모들은 눈물을 흘렸다. 김 기대봉사단은 파라과이 전역에 성경적 부모교실을 확산시키기 위해 현지 목회자 초청 세미나를 연다. 

▲ 소망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공부에 집중하는 아이들. 기대봉사단의 사역은 성적은 물론 삶의 방향까지 바꿔놓고 있었다.

현지인의 삶에 녹아드는 선교
김정진 기대봉사단은 주일 오후 인디언 마을 또바꼼에서도 예배를 인도한다. 도심에서 분리된 인디언 마을에서 판자와 벽돌로 엉성하게 집을 짓고 살지만 신앙은 누구보다 순수하다. 그는 인디언 사역을 하며 선교적 삶에 대해 다시 새기게 됐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창립감사예배를 드리던 날, 마을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려 소 한 마리를 잡았다. 그날 따라 일정이 바빴던 김 기대봉사단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먼저 식사를 하라고 전하고는 뒤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마련된 식사는 없었다. 그는 화를 내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인디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인은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밥을 안 먹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목회한다고는 했지만 은연 중에 무언가 베푸는 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인디언들에게 사과하고 식사를 같이했어요. 제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녹아드는 것이 선교임을 깨달았습니다.”

김정진 기대봉사단의 일주일은 쉴 틈이 없다. 주중에는 학교 일로 눈코 뜰 새 없고 주일에는 아순시온 현지인 교회를 인도한 후 한 시간 반 거리 인디언 교회로 이동한다. 인디언 예배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일한 쉬는 시간이라 느낄 정도다.

올해 60대에 들어선 김 기대봉사단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학교사역을 이어갈 동역자,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학교 완공을 위한 재정이다.

그는 “한국인 동역자가 와서 운영하고 있는 두 개의 학교 중 한 곳에 앉아있기만 해도 힘이 될 것 같다”면서 “파라과이 소망학교와 에벤에셀학교가 영적, 지적, 육적으로 아름답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키워내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기아대책은 김 기대봉사단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헌신적으로 선교하는 사역자들을 위한 콜링(Calling)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콜링 캠페인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총회장:이종승 목사)도 동참했다. 총회와 기아대책은 양 쪽에 함께 소속된 모든 선교사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생활비, 의료비, 교육비 등 긴급한 재정문제가 생겼을 때 지원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기아대책 모금지원본부 조찬욱 팀장은 “영적, 육체적으로 굶주린 이웃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선교사들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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