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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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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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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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십자군(1212년)운동을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과거 전승으로 전해온 소년 십자군은 당대의 신빙성 있는 기록들과 다른 연대기를 조합한 결과 대부분은 사실에 기반을 둔 픽션이나 완전한 픽션으로 생각됩니다. 일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소년 십자군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독일 쾰른의 니콜라스와 프랑스 방돔의 에티엔(혹은 스테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212년 여름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서는 양치기 소년 에티엔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가난한 순례자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제게 빵을 청하셨습니다. 그런 후 이 편지를 임금님께 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가 몰던 양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에티엔은 그러면서 출처불명의 편지 한 통을 들고 나타나자 수천 명의 소년소녀가 그의 뒤를 따랐고, 이들은 부모나 신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명을 완수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이들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며 돈과 양식을 들고 아이들을 찾았습니다. 게다가 신의 부름을 받은 에티엔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천사가 되어 신이 출현한 것과 같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국왕은 그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누구도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고작 열두서너 살의 어린 십자군들은 마르세유 항을 향해 발길을 돌렸고, 무리는 이미 3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3만 명이 나가려면 얼마나 많은 식량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잠자리가 필요했겠습니까? 그들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 마르세유까지 탈 없이 당도했다는 것이야말로 그 시대의 광기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부추긴 어른들은 마르세유 상인들을 너무 우습게 보았습니다. 마르세유에서 이들을 배 일곱 척에 태운 선주들은 곧 성지를 향해 출발했는데, 두 척은 이내 난파당하고 나머지 배에 타고 있던 어린 십자군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내리자마자 노예 상인들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후에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와 알렉산드리아 술탄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져 십자군으로 끌려갔던 노예 700여 명은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년들의 비극은 이로써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는 니콜라스라는 소년이 성지를 되찾으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고 팔레스타인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콜라스는 자신이 남쪽에 도달하면 예루살렘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바다가 갈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를 믿은 수많은 사람들이 행진에 가담했습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의 브린디시 항구까지 가야 했던 그들은 알프스 산맥을 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항구에서 배를 타기 직전에 사제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대부분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완전 거지였는데, 떠나올 때의 태도와는 달리 자신들이 왜 이곳까지 왔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의욕을 상실한 지도자 니콜라우스는 어디로 갔는지 행방조차 묘연해졌습니다. 성지에 도달하거나 교황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지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그 과정에서 노예로 팔려간 아이들이 없었다면 그것은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세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소년십자군 이야기는 왜곡되거나 과장된 상태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소년십자군 사건을 전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실체와 이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소년십자군을 한두 가지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있었던 가난한 자들의 행진과 민중봉기 대부분이 소년 십자군으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건들의 동기에는 종교적인 열정, 기득권 세력인 귀족과 성직자 등으로 이루어진 십자군에 대한 불신,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 경제적인 문제 등이 다양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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