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십자가 고난 끝에 민주주의 이루다”

6월 항쟁 30년, 그 곳에 한국교회가 있었다 이인창 기자l승인2017.06.14 18:25:26l수정2017.06.14 18:28l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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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29일 민정당 차기 대선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당 대표는 시국 수습 특별선언을 발표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88년 평화적 정부 이양, 지방자치제도 실현 등 8개항을 발표한다.

거리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하나가 돼 외쳤던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현실이 되는 순간. 같은 해 12월 16일 새로운 헌법에 의해 치러진 선거는 모든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역사로 기록됐다. 

최근 6월 민주화운동, 이른 바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면서 미디어 매체에서는 당시 생생한 시민들의 함성을 조명했다. 특히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 등 천주교의 역할이 의미 있게 다뤄졌다. 실제 전국적으로 가톨릭 성당은 당시 시민 대학생들에게 민주화 시위를 위해 중요한 근거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역사적 현장에는 한국 개신교회의 역할도 매우 컸다. 개신교 안에서도 인권과 민주화, 통일을 위해 중요한 사역 펼쳐졌다. 1960~70년대 이어져온 한국교회 내 민주화운동의 명맥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당시 한국교회를 다시 조명한다.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는 1987년 6월 10일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42번의 종소리를 울렸던 종탑이 지금도 우뚝 서 있다.

민주주의 기다리는 42번의 종소리 
대한성공회 대성당에는 ‘유월민주항쟁진원지’라는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등록문화재이자 교구 집무실로 사용되는 경운궁 양이재 앞이다. 표지석 크기는 작지만 의미는 매우 크다.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대성당 종탑에서 42번의 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전국적으로 맹렬하게 불었던 6월 민주주의 바람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분단 독재 42년을 상징하는 종소리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의 마음이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민주헌법쟁취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6·10범국민운동대회’가 타종과 함께 시작됐다. 이 때를 기점으로 6.29 선언까지 치열했던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다. 6월 민주화운동은 학생과 재야세력 중심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합류하게 됐고, 전국적으로 직선제를 요구하는 물결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야당과 종교계, 학생단체 등 각계 사회운동 단체들이 연대하면서 불과 두 주 전에 만들어졌다. 이른 바 국본이다. 국본은 6월 항쟁기간 중추적 역할을 했다. 

국본의 상임집행위원장은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오충일 목사가 맡았다. 상임공동대표는 기장의 고 박형규 목사와 예장 통합의 금영균 목사였다.  

성공회에서 울린 종소리에 광화문과 을지로, 태평로, 종로, 남대문 등 일대를 지나가던 차량들은 일제히 경적을 울린다. 시내 곳곳에서 애국가를 학생과 시민들이 합창하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다. 

사흘 전 미리 성공회 대성당을 들어와 있던 국본 집행부 외에 더 많은 시위대가 합류하려고 했지만 겹겹이 막고 있는 경찰에 의해 진출입이 봉쇄됐다. 

당시 성공회 민주청년회 대표였던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유시경 신부는 무척 살벌했던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유 신부는 경찰들이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있어서 성공회 외부 사람들이 열흘 이상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삼엄했지만, 성공회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내외부를 오가면서 재야 대표들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유 신부는 “국본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대회를 열기 어려워지자, 당시 서울주교좌 박종기 주임신부님이 성공회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어쩌면 작은 성공회를 구레네 시몬처럼 사용해서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한 십자가를 짊어지게 한 것 같다”고 추억했다. 

사실 성공회 내에서도 교인들 간 찬반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와 비난을 무릅쓴 한 성직자의 신념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앞당기는 의미있는 초석이 됐다. 

생전 고 박형규 목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고난을 넘어 완성될 수 있었다. 민주화를 위해 온몸으로 외쳤던 시민 학생들의 외침을 기억해야 우리 나라가 참된 길을 갈 수 있다”고 당부한 바 있다. 

6월 민주화운동 물결 속 빛난 교회 
6월 항쟁의 주요 거점 가운데는 한국교회가 있었다. 사실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출범 장소도 교회였다. 명동성당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을지로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였다. 

국본 발기인대회를 열기 위해서는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의사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당초 성공회 대성당과 종로 복음교회, 명동성당, 향린교회 4곳을 예정지로 정하고, 개최 당일까지 미정으로 남겨두었다가 경찰이 소홀한 향린교회로 확정했다. 

당일 아침 경찰의 감시를 따돌린 150여명 재야인사들은 향린교회 3층 예배실에 모여서 선언문을 읽고 국본 발기인대회를 마침내 개최했다. 6월 민주항쟁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조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1987년 1월에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경찰의 고문에 사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 나라가 들끓었다. 당시 전두환은 4.13 호헌 담화를 발표하며 직선제 요구를 거절하며 공포정국으로 몰아갔다. 

한국기독교회관에서는 호헌조치를 철폐를 요구하는 한국교회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교계단체들은 1970년대 긴급조치 철폐, 민주화운동 구속자를 위한 목요기도회 등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해왔다. 

1987년 1월 박종철이 사망했을 때에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철야기도회를 개최했고, 이후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와 같이 ‘고 박종철 형제 추모예배’를 열었다. 기독청년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 정권이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사죄하는 길은 국민 앞에 엎드리고 스스로 퇴진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1987년 6월에도 기독교회관은 한국교회 목소리를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희생되면서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염원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시국선언과 기도회가 연속해서 열렸다. 

6월 16~21일 교회협 회원교단들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다. 감리회는 종교교회, 통합총회는 새문안교회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6월 18일 전국 최대의 시위로 기록된 ‘최루탄 추방의 날’ 행사는 예장 통합총회 연동교회에서 개최됐다. 

어둠의 시대를 살아냈던 기독 청년들
올해 30주년을 맞아 기독 청년으로서 당시를 살았던 이들이 SNS 등을 통해 회상하는 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밀알복지재단 밀알디아코니아연구소장 김진 목사는 “총신대 재학 중 동료 학생 6명과 함께 예장 합동 총회장실을 점거하고 ‘호헌철폐 독재타도’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우리를 따라 전교생이 휴강하고 독재타도에 동참했다. 이후 6·10민주화 투쟁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CBS 기독교방송 권혁률 선임기자는 당시 기독교 청년학생 대표로 활동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권 선임기자는 “청년대표들은 거의 날마다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구호를 정하고 유인물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경찰 감시를 피해 전대협 지도부를 비롯해 민청련과 가톨릭 청년회, 기독청년협의회 대표가 모여 가두시위 계획을 협의했다”면서 “우리의 힘은 전두환 정권에 비해 너무나 미약했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위대한 힘이 결국 독재정권의 항복 선언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기독 청년들의 고민은 깊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치열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 양심의 힘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신앙의 양심과 기도의 힘,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은 투지가 한국교회를 움직였다. 
30년 전,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자유, 평등, 인권, 통일의 담론을 만들어내며 가지를 뻗었다. 예언자적 사명으로 시대를 선도한 한국교회가 다시 제 빛을 발할 때이다.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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