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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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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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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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편 39:4~7
찬송 479장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게 될 때 강해지고 하나님은 이런 자를 쓰십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 할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짧은 인생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살까?’, 또 하나는 ‘먹고 마시고 즐기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인생을 하루살이처럼 사는 것입니다. 결산의 때를 생각하고 허송세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위인도 죽음과 싸워 이긴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천년만년 살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겸손이고 삶을 허송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소유욕과 탐욕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짧은 인생길에 영원한 죽음을 갖다 주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청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죽음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예수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맙시다. 세상 것에 속지 맙시다. 세상 것엔 영원이나 생명이 없습니다. 겸손히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시다. 손 넓이만한 인생에 집착하지 맙시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삽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고  오직 주의 것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신속히 지나가는 인생 여정을 지혜롭게 하시고, 영생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외로운 헌신자

열왕기상 18:7~15
찬송 312장


아합 왕은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왕상16:30)이었습니다. 악한 왕의 기준과도 같은 여로보암 1세의 행동을 가벼운 것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는 바알 숭배를 전국으로 확장 시켰고, 바알 숭배자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 온 백성들까지 타락의 길을 부추겼습니다. 반면 여호와를 믿는 자들에게는 핍박을 가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이런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 이라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엘리야를 준비시키시고 분연히 일으키셔서 가장 악한 시대에도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 되심을 보이셨습니다.
그 때 오바댜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국의 살림을 맡은 관리였습니다.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고 부정과 부패 그리고 우상 숭배가 가득한 환경 속에서 정직하게 인정받고 신뢰받는 관리였습니다. 그 원인은 그가 크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왕상18:3)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쿠데타로 세워진 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 엄청난 핍박이 가해지던 때에 자신의 신앙을 올곧게 지킨다는 것은 순교적인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명의 사람 오바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 엘리야는 아니어도 나의 삶의 현장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있는 믿음을 증명해 보인 오바댜의 신실한 모습을 갖고 살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오직 주님의 의지하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드러내며 살게 하옵소서.

고혁성 목사(염광교회)

수요일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셨다

마태복음 28:1~10
찬송 161장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갖고 죽으신 것을 믿고, 죽은 지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갖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첫째로 여인들인 무덤에서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마 28:1~6). 여인들은 십자가의 현장에 함께 했고, 예수님께서 무덤에 들어가는 곳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무덤에 가서 천사들에게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은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분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둘째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마 28:7). 천사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말하면서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베드로를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난 곳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했던 그 마음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마 28:8~10).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나라에 살고 있어 세상 나라만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는 신앙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와 자녀가 부활신앙으로 살며 부활의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목양교회)

목요일

이미 다 읽고, 다 아신다!

이사야 37:14~20
찬송 370장


히스기야 왕이 선왕 때부터 지배받던 앗수르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습니다(왕하18:7). 그러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와 유다의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항복하고 성전의 금은까지 싹싹 긁어 바쳤습니다.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은 산헤립은, 유다를 사마리아처럼 함락시키려고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성전의 사람들과 이사야 선지자도 베옷을 입히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산헤립의 장군 랍사게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히스기야를 조롱하며 나라마저 농락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원통하고 분해서 그 편지를 가지고 성전으로 갑니다. 편지를 펼치고 하나님께 일러바칩니다. 하나님께서 내심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왕하19:20). ‘다 읽었고, 다 들었네. 다 알고 있다네! 앗수르가 나를 모욕하는 것들을 히스기야 네가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편지로 그냥 가져왔구나! 너도 내 심경 같구나! 이제 내가 알아서 하마!’ 그날 밤 앗수르의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산헤립은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어도,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메커니즘을 어떡해야 합니까! 히스기야의 퍼포먼스적인 기도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오늘의 기도
나와 내 가족, 나의 필요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행복한 간섭

히브리서 12:5~11
찬송 570장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사53:6).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생명과 복을 받으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간섭을 받기 싫다며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죄의 근본입니다. 그 결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목자로 오신 주님의 간섭을 받아야만 복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벧전2:25)
참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마11:28~29)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말씀의 간섭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쉼도 없고 죄의 짐, 저주의 짐, 두려움의 짐, 염려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간섭을 받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심으로 쉼을 얻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복을 얻으려면 말씀의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 징계를 받을 때 경히 여기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5~6).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에서 멀어지면 돌이키기 위해 때로 아픔이나 고난을 주시는데 그것이 징계입니다.
둘째, 징계를 통해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11). 연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뜻에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징계가 왔을 때 깨닫고 연단을 받으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은 행복한 간섭입니다. 인간이 자기 뜻과 고집대로 살면 멸망하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평생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한용준 목사(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시험을 이기는 믿음

마태복음 4:1~11
찬송 342장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때부터 시작합니다(1절). 주님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실 때 시험도 본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성도가 시험을 만나는 곳은 어디이며 그 목적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도가 시험을 마나는 곳은 광야였습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몹시 굶주릴 사탄이 유혹했습니다(3절). 우리에게도 이렇게 어려울 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심신이 약해 질 때, 먹고 살기 위해 수단방법 가릴 여유가 없어질 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좋은 환경, 행복한 신앙생활 속에도 시험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벧전5:8).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고난당하느냐는 것입니다(3, 6절). 예수를 잘 믿어도 세상 친구들보다 잘 안될 때, 마귀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수단방법 가릴 것 없다, ‘일단 성공하고 보자, 일단 영광을 얻고 보자’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당당하게 시험을 직면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순위를 바르게 합시다. 기독교는 떡을 경시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는 신앙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아이들만큼은 배부르게 잘 먹고 편안하게 살면 모두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의식주보다 더 중요한 십자가 정신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사탄이 주는 고깃덩어리를 먹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마귀의 시험을 주의 말씀을 통해, 깨어 기도하므로 승리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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