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테러의 일상, 그리고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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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테러의 일상, 그리고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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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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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45)

시대는 혼란스럽다. 온갖 사상으로 무장하고 서로 대립한다. 시리아 내전은 국제평화군도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되었고, 강대국들의 첨예한 이권이 힘겨루기 하고 있다. 런던발 외신은 또 경악스런 테러소식을 알린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애틋하거나 행복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런던브리지에 테러가 왠말인가. 아니 테러는 지구촌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묻지마 폭력이 아니던가.

런던, 파리의 테러 광란은 거의 일상이 된 듯하다. 얼마전 베를린에서도 테러 공포로 인해 대형집회가 취소되었다 한다. 필리핀 정부군은 IS계 테러집단을 소탕한다고 중무장한 채 교전을 벌이고 있는데 무죄한 부녀자들에게까지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메이 수상은 결국 ‘우리의 인내는 끝났다’고 공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처럼 종교와 연관된 극단적 테러집단의 소행이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으나, 외로운 늑대나 사회부적응자들의 ‘묻지마’ 테러가 숨죽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그 희생대상이 연약한 어린이나 여인들이고 보면 테러는 어떤 이유로든지 반인간적인 만행이다. 테러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라면 ‘간밤의 사건사고 소식’에 들려오는 살인사건은 어떤가. 분노, 복수, 이권 등으로 생명을 노리는 살상은 우발적, 개인적이라 하더라도 테러임에 확실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음주음전이다. 이로 인한 억울한 죽음은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해 수백 명의 인명 피해가 뒤따른다. 그 숫자는 테러가 자행한 대량살상 희생자보다 많기에 경악스럽다. 테러는 이제 일상에 하나가 되었다. 비극이 일상에 하나가 된 셈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고난과 고통이 일상에 편입해 들어왔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령 하나님께 간구드린다. 

보혜사 성령님, 고통 속에 있는 저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생명을 만드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하셨는데, 이제 세상과 그 가운데 거하는 인생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여러가지 공포와 불안을 야기시킨 인생들의 실수와 죄악을 불쌍히 여기시고 만물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만물이 탄식하는 이 세계에서 다시금 성령님이 주시는 환희와 기쁨을 얻게 하옵소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하신 주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내려주시어 고난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허물을 제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거하는 모든 만물과 인생들이 영원히 주 하나님을 찬송케 하옵소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주 하나님,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을 여기에 충만히 부어주옵소서. 온 나라와 백성이 평화 속에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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