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그럼 커피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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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그럼 커피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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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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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⑨

* 누가복음 3:21/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5:16/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
6:12/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6: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2:40~46/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중략)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기도하기 어려워하고, 지속적인 기도생활에 실패하는 경우 신앙 선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야.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대화하듯이 하나님께 말하면 돼. 네가 부모님이나 친구랑 대화할 때 문장 만들어가며 예의 차리고 말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처럼 해.’ 

그렇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기도는 하나님과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의 대화가 5분을 넘기기 힘들고 날마다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대화가 안 통해서? 서로 대화 수준이 안 맞아서?

사실, ‘대화’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어색하고, 미숙하며, 때로는 귀찮은 것이기도 하다. 말로는 ‘우리집은 대화가 없어서 싫어요.’ ‘우리 직장 상사하고는 대화가 안 통해요.’ ‘어른들과는 세대 차이가 나서 대화가 안 돼요.’ 라고 불평하지만, 정말 그 대화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을 정도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들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애인하고랑 대화가 잘 돼요,’ ‘친구들과는 대화를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대화가 잘 되고 안 되고의 열쇠는 ‘나의 관심사’ ‘내가 좋아하는 주제’ ‘나와 눈높이가 같은 상대’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3년을 정말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이제는 하루 2시간 기도를 잘(?) 실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씩 기도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하루는 ‘기도는 대화라는데, 커피 마시면서 정말 대화하듯이 해볼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커피를 타서 기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기도노트를 펼쳐서 이것 저것 쓰고 적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결과는?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사복음서 중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장면이 두드러지게 기록된 것은 누가복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기도 장면이 처음 기록된 현장은 세례식 때였고, 마지막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이셨다.

대부분 혼자 기도하셨고, 밤을 지나 새벽이 올 때 까지 기도하셨고, 편하고 추위를 막아주는 성전이나 집이 아니라 한기가 온 몸을 파고들며 어둠의 공포를 이겨야 되는 산 속이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처절한 피의 기도를 십자가 상에서 올리는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대화라고? 기도가 대화라고?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말하듯이 하라고? 깜깜한 산 속에서, 밤 추위에 덜덜 떨며? 마지막 생명의 한 호흡이 남아 있는 피의 십자가 옆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의 경험으로 기도는 전쟁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자리 앞 벽에 “기도는 전쟁이다!- 너는 승리할 것인가 패배할 것인가?” 라고 B3 크기 종이에 굵은 글씨체로 써붙였다. 

사도바울의 말처럼, 군사처럼 훈련을 멈추면 안 된다. 농부처럼 날마다 논밭을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경주자처럼 중간에 멈출 수 없다. 대화하듯 흥얼대며 전쟁하는 군사는 바로 죽음이다. 온갖 일상 일을 다 해가며 일하는 농부의 밭은 황무지가 된다. 커피 마시며 마라톤 뛰는 경주자는 트랙에서 쫓겨난다.   
결론은 기도는 대화 따위가 아니다. 기도는 피와 눈물의 전쟁이다. 

함께 기도>>>풀벌레 소리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강아지 소리처럼 사랑스럽지도 않고, 시냇물 소리처럼 정겹지도 않은 우리의 기도 소리. 그렇다고 천둥번개처럼 우렁차지도 못 하고, 호랑이처럼 믿음직하지도 않으며, 벌들의 날개짓 소리처럼 끈질기지도 않은 우리의 기도.

이렇게 하잘 것 없는 그 기도 소리를 날마다 안타깝게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왜? 왜? 왜 우리의 기도를 그렇게 기다리시는지요? 내 마음에 들어야만 대화 통한다고 생각하는 못되고 얼굴 뻔뻔한 우리들에게 무슨 볼 것이 있다고 날마다 우리에게 얼굴을 돌리시는지요? 너무도 죄송스러운데도 예수님 의지하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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