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건강을 위해 치유의 고통도 견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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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건강을 위해 치유의 고통도 견디어야 한다
  • 이경직 교수(백석대)
  • 승인 2017.05.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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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영적 권위
▲ 이경직 교수(백석대)

모세가 시내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출 32:17)라고 말한다. 모세는 그 소리가 승전가도 패전가도 아니라 “노래하는 소리”(출 32:18)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영적 전쟁의 소리였다. 사태는 심각했으며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십계명을 손으로 쓰신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다(출 32:19).

그러나 아론은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출 32:22)라고 모세를 달랜다. 잘못된 영적 지도자 아론은 참된 영적 지도자 모세의 권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그렇게 노할 일이 아니라고 변명하고자 한다. 기대가 높았을 때는 그 기대를 채우지 못한 사람에게 화가 나지만, 아예 기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화도 나지 않는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리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모세에게 전달한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출 32:23) 그러나 자신이 행한 일은 왜곡해서 전한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 32:24). 아론에 따르면 금 송아지는 기적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론이 금을 녹여 조각칼로 새겨 금 송아지 형상을 만든 것(출 32:4)을 그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 알고 있다. 아론은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기 위해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모세는 지도자 아론의 잘못을 지적한다.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출 32:25).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요구를 바로잡지 못했다. 그러나 모세는 레위 자손에게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출 32:27)는 하나님의 명령을 권위 있게 전했다. 레위 자손은 모세의 영적 권위 앞에서 그 명령을 철저히 지켰다.

오늘날도 영적 지도자는 성도들의 요구에 무조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삿 17:6) 하나님 백성의 삶의 기준은 그들의 다수 의견도 아니며 그들의 주관적 필요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는 규제나 제약을 싫어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것이 언제나 옳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무질서한 상태는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으로 표현되는 많은 규제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 규제는 우리를 얽어매고 부자유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모세가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 32:26)고 했을 때, 이 명령에 순종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레위 자손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함께 우상숭배에 참여했던 동료 이스라엘 백성을 칼로 죽이라고 요구하셨다.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출 32:27)는 요구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했던 형제와 친구, 이웃을 죽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들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예수님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고 말씀하셨다. 

이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는데 가족이 방해가 된다면 그 가족은 그의 원수가 된다는 뜻이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 이웃과 멀어지는 아픔을 견디어야 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금송아지 숭배에 적극적이었던 3천 명이 그날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던 영적으로 나쁜 바이러스가 제거되었다. 때때로 우리는 영적 건강을 위해 치유의 고통을 견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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