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수도회(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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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수도회(下)
  • 황의봉 목사(평안교회 담임)
  • 승인 2017.04.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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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중세 수도원 운동(5)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1209년 이탈리아 앗시시의 프란체스코에 의해 설립된 수도회로서 ‘헐벗은 그리스도를 헐벗은 채로 따르기 위하여’ 개인이나 단체의 재산 소유가 금지됐습니다. 프란체스코는 1209년 동지들을 모아 이노센트 3세로부터 수도단 설립 허가를 얻었는데, 처음에는 ‘앗시시의 참회단’이라고 했습니다. 1212년에는 ‘소 형제단’이라고 하였으나 후일 설립자의 이름을 따라 ‘프란체스코 수도단’으로 명명됐습니다.

성경에서 탁발수도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으라고 하면 모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종살이로 고역을 치를 때였습니다. 모세 혼자만 궁중에서 호화 호식하였습니다.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궁중을 뛰쳐나왔습니다. 탁발수도회 당시 수도사가 되었다면 최고로 출세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곳을 뛰쳐나와 길거리에서 살면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발버둥친 탁발수도회가 모세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모세처럼 거절하였습니다. 모세는 궁중을 거절하였습니다. 작은 거절이 아니라 큰 거절이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거절하였습니다. 일부 거절이 아니라 전부 거절이었습니다. ②모세처럼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궁중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았습니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은 허리띠를 매고 있습니다.

세 매듭이 있습니다. 청빈(淸貧), 순결(純潔), 순명(順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프란체스코 성당에는 그가 생존하여 있을 때 맸던 옷과 허리띠가 유리병에 담겨 있습니다. ③모세처럼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불편하여도, 피곤하여도, 배고파도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더구나 자존심상하는 멸시를 당하여도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이것이 탁발수도회에 흐르는 DNA였습니다. 

1221년부터 이 수도단은 크게 발전하여 단원이 30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고, 새로운 규칙제정이 불가피하였습니다. 또 처음의 방침과는 달리 토지를 기증받아 건물을 세우게 되었고 전도, 구제, 봉사의 본래의 기본 정신 외에도 학문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힘썼습니다. 그 결과 이 수도원에서 로저 베이컨(Roger Bacon), 보나벤투라(Bonaventura),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월리엄 오캄(William Ockham) 등과 같은 학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는 육체를 피 흘리기까지 때리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보았고, 죽기 2년 전에 갈라디아 6장 17절을 따라 자신의 고환을 제거했을 만큼 금욕적이었습니다. 극단적인 금욕은 그의 건강을 해쳐 1226년 10월 3일, 44세의 나이로 포르튠쿨라 예배당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앗시시 언덕에 사형장이 있었는데 자기를 그 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죄수들과 함께 묻혔습니다. 후에 그 곳에 성 프란체스코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가장 악한 자리가 가장 거룩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지 2년 후인 1228년 7월 16일 당시 교황 그레고리 9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죽은 후 탁발 수도회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수도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프란체스코의 이상과는 달리 변화, 변질되었고, 엄수파와 수도파로 양분되었습니다. 엄수파(엄격파, Observant)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청빈생활을 강조하는 프란체스코 근본 사상을 엄격하게 따르는 일파였습니다. 수도파(완화파, Conventual)는 프란체스코의 엄격한 규율을 다소 완화하여 수도생활을 하면 된다는 일파였습니다. 

당시 교황 요한 22세는 엄수파를 박해하였고, 수도파를 지지하였습니다. 이 당시 ‘역사의 삼 시기설’을 주장하였던 요하킴 피오레(Joachim de Fiore)는 엄수파의 인물이었는데, 그는 요한 22세에 의해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양파는 계속 분쟁하였고 후일 교황 레오 10세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분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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