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볼 수 없지만 손과 발, 마음으로 세상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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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볼 수 없지만 손과 발, 마음으로 세상을 봅니다”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7.04.12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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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세상을 이어주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한국교회 소통의 현장을 찾아서 ⑦

▲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시각장애인들과 세상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둘 사이에서 징검다리의 역할을 담당한다.

햇빛이 따뜻한 지난 7일 아침.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 장애인들은 교사와 자원봉사자의 손을 잡고 각자 정해진 코스로 산책을 나간다. 김현식(가명) 씨가 오늘 산책할 코스는 센터에서 무궁화동산까지다. 센터에서 나와 큰 도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길 곳곳에는 개나리, 목련 등의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의 손을 잡고 가는 김 씨에게는 태양이 내리쬐는 눈부심도, 활짝 핀 꽃의 이파리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두색의 풀잎도 보이지 않는다. 봄이 오고 있는 걸 느끼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다. 그저 옆에서 함께하는 자원봉사자의 손을 꼭 붙잡고,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한 발, 또 한 발 내딛을 뿐이다. 고르지 못한 길의 표면은 김 씨에게 넘어질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이다. 

성인 한 명이 천천히 걸으면 약 10분 정도 걸리지만, 이들은 2~3배의 시간을 소요하며 걷는다. 자주 가는 거리이지만, 산책을 다녀온 김 씨는 지쳤는지 센터 옆 마당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한다. 함께 다녀온 자원봉사자는 김 씨가 휴식을 어느 정도 마칠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리번학습지원센터는 실로암 복지재단 산하 기관이다. 또 센터를 이용하는 이들은 시각 중복 장애인이다. 이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적, 혹은 자폐 등을 함께 끌어안고 자랐기 때문에 발달장애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김 씨처럼 질문하면 짧게 대답하거나 간략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례도 있지만, 이조차도 어려운 사람도 볼 수 있다. 

센터에서 3주 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찬휘(26) 씨는 김 씨를 주로 담당한다. 졸업반인데다 전공이 사회복지도 아니고 장래 희망에 관련 직종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매주 월요일, 금요일이 되면 꼭 센터를 찾아온다. 

이 씨가 시각장애 복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본인의 어머니 때문이다. 이찬휘 씨의 어머니는 안압 상승으로 약 5년 전부터 시력에 이상이 생겼다. 통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가운데가 잘 안보인다고 하는 이 씨의 어머니. 그는 어머니를 보며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이후에 자신의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찬휘 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가 김현식 씨 친구와 같은 나이인데, 그래도 김 씨가 제 자신을 동등한 관계로 여겨주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을 느낀다. 또 자신의 목소리, 발소리 등으로 저를 알아봐주고 기억해주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이 씨는 또 “시각장애인 친구들은 다른 장애인 친구들보다 더욱 착하다”며 “다른 장애인 친구들은 화가 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주변에 화를 푸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각중복장애인 친구들은 자해를 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 모습을 보면 그런 방법밖에 모르는 그 친구들이 너무 안타깝고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고 전한다. 

헬렌 켈러와 함께한 설리번처럼
센터를 이용하는 시각 중복 장애인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중복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받아들였지만, 인정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어릴 때는 단순히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느리다고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청소년기에 들어선 자신의 자녀에게 또 다른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제 시각 중복 장애인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립할 수 있는 단계에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저 건강하게,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자녀가 사회적인 생활에 어우러지고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질 바랄 뿐이다.

설리번학습지원센터가 생기기 전, 국내에는 시각 중복 장애인을 위한 알맞은 센터를 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시각 중복 장애인의 경우는 교사 혹은 자원봉사자와의 일대일 맞춤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복지기관은 한 명의 교사가 여러 명의 아이들을 맡기 때문에 시각 중복 장애인들을 따로 잘 챙겨주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은애 부장은 “국내 대부분 복지기관에서는 시각 중복 장애인들을 제대로 돌보기엔 어려운 상황이며, 그 곳에 맡겨진 중복 장애인 친구들은 이내 소침해지거나 점점 퇴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부모들도 그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섣불리 복지기관으로 자신의 자녀를 보내지 못한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했다.

박 부장은 또 “설리번 센터는 헬렌 켈러를 가르친 설리번 선생의 정신을 따르는 곳”이라며 “비록 자립이 어렵고 볼 수 없는 중복 장애인 친구들이지만, 이들에게 시각이 아닌 촉감, 청각, 후각 등으로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싶고, 마음에 평안을 제공하는 곳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위해 보냄 받은 자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산하 맹인선교부를 통해 설립된 기관이다. 요한복음 9장 1~7절, ‘보냄을 받은 자, 보냄을 받다’는 실로암의 뜻처럼,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보냄을 받은 복지관이다. 시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 슬로건에 맞게 시각장애인의 전인적 복지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다양한 센터를 설립하고 지원한다. 

복지관 건물 1층에 있는 ‘카페 모아(CAFE MORE)’ 역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설립한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기관이다. 서울 봉천동 본점을 시작으로 현재 관악구청점, 실로암안과병원점, 가산점 등 6호점까지 확장시켰다. 

본점 카페 모아에서 2년 넘게 근무하는 윤 씨는 취직 전에도 바리스타와 같은 서비스직을 하고 싶었지만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카페 모아는 그에게 일자리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한 셈이다.
시각장애인이지만 윤 씨는 사물이나 물체를 어느 정도까지는 식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장애인에 비하면 시야가 좁고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갈아놓은 커피 가루를 포타 필터에 알맞게 담아 커피머신 본체에 끼워 넣고 원액을 추출하는 일. 라떼나 카푸치노 등을 만들기 위해 차가운 우유를 스팀 컵에 붓고 스팀기로 우유를 뜨겁게 데우고 우유거품을 만드는 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위해 9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을 컵에 담거나 차가운 얼음을 흘리지 않고 얼음 냉장고에서 퍼내 담는 일 등 시각장애인이 커피 한 잔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비장애인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 씨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윤 씨는 “커피를 만들다보면 물의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아쉽지만, 2년 넘게 근무하면서 큰 클레임을 겪은 적이 없다”며 “그래도 제가 만든 커피를 맛있다고 말해주시는 분, 단골이 돼서 자주 찾아와주시는 분, 먼저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게 일할 수 있다”며 웃는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보이셨다. 비록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뜨게 하지는 못하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제약을 넘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친구가 되어주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사역을 통해 진정한 성경 속 이웃사랑을 볼 수 있었다. 복지관의 사역은 시각장애인들과 세상 사이에서 소통의 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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