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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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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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1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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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 꿈의교회

얼마 전, 음료수를 사러 마트에 들어갔습니다. 음료수를 고르고 나니, 어느새 줄이 길어져서 저도 역시 줄을 섰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새치기를 하면서 담배를 요청하는 겁니다. 
직원이 줄을 서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러니까 당장 담배를 주면 시간을 아낄 것’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냈습니다. 

그동안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들은 저마다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역시 ‘이게 뭔가’하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새치기로 인한 실랑이는 2~3분이나 이어져서, 줄을 섰던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봤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며칠이 지났습니다.지인과의 약속을 위해서 어떤 식당에 갔습니다. 반가운 지인을 만나서 인사하는데, 옆에서 함께 수행으로 온 듯한 분이 저를 보더니 90도로 인사합니다. 

음식이 나오고 안부를 물으며 서로 회포를 푸는데, 갑자기 그 수행원이 한참 보다가 다가오더니 묻습니다. “목사님, 혹시 뭐 도와드릴까요?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물수건 좀 갖다 드릴까요?” 그래서 저는 ‘괜찮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또 다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는 30여 분이 지났는데, 그 수행원이 또 다시 왔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같은 질문을 다시 물어봅니다. 그 때부터 저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경 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편하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도 읽어주면 고마울 텐데, 더욱 미안하게 만들면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소소한 일이었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에서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배려’였습니다. ‘배려’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잘 맞춰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헤아린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잘 살펴서,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사건은 모두 그런 헤아림이 부족했습니다. 앞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무시했고, 뒤의 경우에는 지나친 겸손과 간섭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헤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저기 줄을 서 있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지, 미리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또한 내가 ‘섬겨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내가 이렇게 물어볼 때 어떻게 생각할지, 미리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 헤아림이 없이 그저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닌 오히려 ‘민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려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세상 안에 배려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까지 시행해서, 배려를 법적으로 강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배려는 간단한 데서 출발합니다. 잠시만 멈춰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면 됩니다.

그것을 가장 잘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환자의 병만 고치시지 않고, 그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들을 한번 더 용서하셔서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어쩌면 나 혼자 살기에 바빠서, 옆 사람을 돌아보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봅시다. 평소에 무심코 넘어갔던 가족, 친구, 동료들의 마음을 한 번만 돌아보면,내 인생도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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