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들 딸을 안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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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들 딸을 안아주소서”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04.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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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하는 기도회, 세월호 인양 현장 목포신항을 찾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향하신 곳은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도, 왕궁도 아니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저주했던 군중들 한가운데로 보란 듯이 나타나시지도 않았다. 예수님이 향하신 곳은 좌절하고 상심한 제자들이 다시 고기를 잡으러 돌아간 갈릴리였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하시고 복음을 전할 일꾼들로 일으켜 세우셨다.

올해 부활절 4월 16일. 크리스천들이 가장 기뻐해야 할 기독교 최대의 명절이지만 공교롭게도 3년 전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낯설지 않은 날짜이기도 하다. 그리고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유가족’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부활하시고 낙심한 제자들을 찾아가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가장 먼저 어디로 향하실까?

낮은 곳으로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한 크리스천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은 세월호 인양 현장인 목포신항에서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하는 기도회를 열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80여명의 기독인들은 한마음으로 미수습자들이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길 기도했다.

▲ 세월호 인양 현장 목포신항에는 미수습자 가족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세월호가 아직 바다에 머물러있던 지난 8일 오전, 무거운 마음을 안고 목포로 향하는 차편에 몸을 실었다. 장장 5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 목포신항에 가까워지자 길가에서 추모의 마음을 담은 노란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자연도 그 마음을 아는지 깃발 아래 샛노란 개나리를 피워냈다. 저 너머 세월호가 보이는 항구 앞 추모공간에는 시민들이 피워낸 개나리가 철제 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항구에는 세월호가 무사히 인양돼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바라는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밖에 시민단체들과 종교인들도 미수습자 가족들을 돕기 위해 부스를 마련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은 기도회를 위해 아침 7시 서울역 앞에서 모였다. 원래 버스 한 대를 대절해 내려올 예정이었지만 신청자가 많아 버스를 한 대 늘려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기도회 현장에는 기독인 모임 인원뿐 아니라 항구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며 추모하던 시민들도 모여 그 자리에서 함께 했다.

“이제 우리 여기 모여 있으니 주여 우리 가운데로 어서 오소서. 절망과 고통 속에 있던 우리 상처 입은 영혼. 이 시간 당신께 다 내려놓겠습니다. 서로의 손길과 웃음과 위로를 통해 주여 당신이 함께 하심을 느끼니, 이제 우리 어디 있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더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인도자의 조용한 기타연주로 시작된 첫 찬양의 가사부터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세월호를 바라보며 모여 앉은 기독인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더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간절히 찬양했다.

이어서 카타콤 라디오 양희삼 목사가 로마서 12장 14~21절 말씀을 본문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성경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갚으실 것이니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쉽게 아멘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슬픔을 딛고 선으로 바꿨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다.’ 말을 꺼내긴 쉽지만 실천하고자 하면 선뜻 내키지 않는 말씀일 것이다. 하물며 가족을 잃은, 아직 시신조차 만나지 못한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하랴.

말씀을 마친 뒤 기도회 참석자들은 세월호의 육상 거치가 신속하고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9명의 미수습자가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2기 세월호 특별 조사위원회가 조속히 출범하기를,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을 지켜주시기를 마음모아 기도했다.

기도회는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전달할 헌금을 모으고 이후 일정을 광고한 뒤 주기도문을 함께 하고 마쳤다. 기도회는 끝났지만 헌금 시간 불렀던 찬양의 가사가 귓속에 내내 맴돌았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 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 미수습자 허다윤 양의 부모 허흥환 씨와 박미은 씨. 기독인들은 이들을 둘러싸고 가족들의 아픔과 안전한 인양을 위해 기도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디 계세요”
이날 기도회에는 미수습자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와 아버지 허흥환 씨가 함께 자리해 참석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세월호 속 미수습자들과 하나님이 함께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힘겹게 이야기하는 박은미 씨의 목소리에서 그간의 피로와 아픔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의 시신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수습되는 현장을 보며 저 중에 분명 마지막이 있을 텐데 내가 마지막이 되면 어떡하나 두려웠습니다. 배가 올라왔지만 다윤이가 저기 있는데도 엄마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너무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열 손가락으로 제 딸을 잡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디 계세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저기 세월호 속에서 아홉 명을 안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안전하게 인양과 수색이 이뤄져서 단 한 명의 실종자도 나오지 않고 아홉 명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딸을 한 번만이라도 안아보는 것이 꿈이라는 어머니의 고요한 외침은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세월호 미수습자 9명 8가정 중 7가정이 기독교 가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을 향한 크리스천들의 위로와 기도도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솔한 목소리 또한 교회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안겼다.

허흥환 씨는 “초창기 교회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하나님을 믿는 나 역시도 가슴이 많이 아팠다”며 힘든 심정을 털어놨다.

“교회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인간은 그럴 수 있잖아요. 아직 더 큰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 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그 힘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끝까지 지켜봐주시고 힘이 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포신항에 모인 이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을 둘러싸고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는 내내 허다윤 양의 어머니, 아버지 두 사람과 참석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계획된 일정이 모두 끝난 이후 참석자들은 준비된 현수막에 각자의 소망을 담은 기도문을 기록했다.

▲ 이날 기도회에는 서울, 익산, 무안, 군산,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 기독인들이 모여 함께 했다.

누구도 부활의 기쁨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이날 기도회 현장에는 서울, 공주, 익산, 무안, 춘천 등 전국에서 모인 기독인들이 함께 했다. 서울에서 온 송민경 씨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만났을 때 우리를 기억해 주는 것이 힘이 된다고 하셔서 꼭 와보고 싶었다. 가족 분들께 잊지 않고 있다,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기도회에 참석한 동기를 전했다.

이번 기도회를 주최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은 그동안 광화문에서, 팽목항에서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해왔다. 세기모의 임왕성 목사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뿐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보태는 일과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 개입해주시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어요. 부족하지만 직접 뵙고 힘을 보태고 함께 기도하고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그는 또 한국교회가 부활절을 맞아 힘들고 아픈 사람들, 억울하고 괴로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수습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의 마음을 같이 품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는 것, 그것을 교회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활절에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들만의 축제로 끝나버린다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공허한 부활절로 끝나지 않을까요. 부활의 기쁨에서조차 소외돼 있는 분들의 아픔을 듣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원하시지 않을까요.”

‘아직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다.’ 이번 기도회의 현수막에 걸린 제목이다. 세월호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 아픔을 씻지 못한 사람도 아직 우리 곁에 있다. 기쁨만이 가득해야 할 부활절. 부활의 기쁨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갈릴리로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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