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 ‘내 아들아’로 시작하여 ‘현숙한 아내’로 마치는 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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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 ‘내 아들아’로 시작하여 ‘현숙한 아내’로 마치는 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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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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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⑥

* 잠언 1:7~10, 31:10~12, 29~31.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1655년

봄이 되니 어김없이 결혼 소식이 우편과 휴대폰, 또는 직접 인사를 통해 수없이 들어옵니다. 지난 겨울 동안은 장례식장을 여러 곳 다녔었지요. 돌이켜보면 겨울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소천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봄만 되면 목련, 개나리, 벚꽃 피듯 여기저기서 화려하며 시끌벅적 축제같은 결혼식이 올려집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신혼부부는 결혼식 뒤, 집들이 같은 축하 자리에서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면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누구 소개로 만났어요? -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셨어요. 기도 응답으로 만났지요.’ ‘이상향이랑 결혼한 거죠? - 그럼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인데요!’ ‘두 분 정말 행복해보여요. -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거예요!’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해주는 것도 많겠네요?- 당연하죠. 눈 만 봐도 우리는 상대방이 무슨 생각하는 지 다 알죠.’  

와! 크리스천 부부는 대단합니다. ‘하나님이 중매 서 주시고, 죽음조차 시기하지 못 할 사랑을 하고, 서로에 대한 완벽한 앎과 신뢰’가 있네요!... 그런데 왜? 해마다 크리스천 가정이 여느 부부들과 다를 바 없이 금이 가고, 산산조각 나며, 때로는 비웃음을 사거나 동정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는지요?

이번에 잠언에 대한 책을 내는 나는 날마다 잠언을 소리 내어 읽지요. 이러다가는 많은 부분을 외울 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언의 마지막 장을 읽는데 의문이 들었습니다. 요즘 여성들이 읽으면 거북할 정도로 잠언은 ‘아들아’ ‘내 아들아’ ‘아들은’ 하며 진행됩니다. 그런데 31장 10절부터 마지막 절인 31절까지는 온통 현숙한 아내에 대한 글입니다. 

사실, 잠언에는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를 조심하라는 교훈이(그것이 영적이든 삶에 대한 것이든)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잠언은(31:2~3절 -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라며 아들에게 훈계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10절부터 지혜와 덕과 한없는 자비로움과 부지런함, 심지어는 강인함과 장사 수완까지 완벽히 갖춘 요즘 말로 하면 알파 걸 중의 알파 걸에 대해 말합니다. ‘이런 여자는 세상에 절대 없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여자에 대해 말합니다. 얼핏 보면 여자에 대한 칭찬같기도 하고, 또는 마지막까지 아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충고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 질문의 푸는 열쇠 중 하나는 31장이 누구의 잠언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31장은 르무엘 왕(King Lemuel- 솔로몬 왕이라고도 하고, 이방 왕이라고도 함)을 위한 그의 모친의 잠언입니다. 그러니 그냥 한 평범한 남자가 아닌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책임진 주권자에 대한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호화사치를 누리는 왕비가 아닌 백성을 챙겨주는 여성이 필요한 것이지요.(아합 왕의 악처 이세벨은 땀 한 방울, 동 전 하나 내놓지 않고 남의 포도밭을 빼앗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보면 단순한 여성차별, 남성 우위라는 성급한 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현숙한 여인 한 사람이 아닌 그저 제 마음에 흡족한 여인 천 명 아니, 수천명을 거느렸기에 오히려 솔로몬과 나라를 멸망의 계곡으로 끌고 가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당신의 곁에는 누가 있는지요? 그저 재밌고 즐겁고 때로는 나를 위해 물질도 써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높은 지위나 대단한 학벌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늘 주의 깊은 삶을 사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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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요즘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나보다 많이 배우고, 부자이며, 뒷 배경이 좋은 사람을 친구로 두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들의 충고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기도의 사람, 예배를 생명처럼 생각하는 사람, 찬양을 사랑하는 사람’ 이런 조건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저는 왕도, 여왕도 아니지만 주님이 이 세상 한 모퉁이에, 우리 가정 속에 세워주신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주님의 말씀을 나의 지혜요, 현숙한 벗으로 믿으오니, 제 인생을 책임져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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