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사순절과 고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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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사순절과 고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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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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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 끝에는 고난주간이 기다리고 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절기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 1:24)에 동참해보고자 일상의 고난을 감수한다. 생활에 절제하며 금식하며 여흥을 삼가하며 주님께 기도로 나아간다. 

더 거룩하고 경건한 기도를 위하여 성도들은 ‘특새’에 깊이 몰입하기도 한다. 이른바 특별새벽기도이다. 이 특새는 세계교회사에 유래없는 신앙운동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세계교회사에 유래없는 부흥을 일으킨 한국교회의 힘이라면 단연 기도이다. 특새는 정말로 특색 있는 한국교회의 상징이요 겸손한 자랑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울부짖는 통회의 기도는 한국교회를 일으키는 능력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를 향한 지탄은 왠 일인고. 이것도 고난이라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그 고난이라 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성도들의 기도는 ‘육신’을 위한 기도로 변질되고 있다. 주님께서 그토록 경계하신 이방인들의 기도에 가까워진다. 그것은 기복주의, 성공신학 등으로 포장되어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파묻힌다.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현대의 성도들은 그저 복을 구한다. 오로지 복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 때 기도는 우상에게 절하는 미신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굶고 몸을 부대끼고 괴롭게 한들 하나님께서 들으실까. 이런 기도는 성전 뜰만 밟다 돌아가는 헛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며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부질없을 것이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고난은 진정한 고난이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멋지게 포장되었다 하더라도. 의를 위하여 매 맞는 것이 진정한 고난이라 베드로 사도는 일러주고 계신다(벧전 3:17). 자신들의 죄와 부패로 인하여 고난 받은 것은 진정한 고난이 아니다. 그것은 심판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마땅히 맞을 매를 자처해놓고 거룩한 고난에 동참한다고 여긴다면 너무나 우스꽝스런 바보들의 행진일 뿐이다. 

사순절 고난은 모든 위선과 기만에 절은 종교행위를 회개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먼저 주님께 영광 존귀 감사를 돌려드리는 영혼으로 나가야 한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기다리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 주 예수님께 송영을 불러올려야 한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시여, 영원히 존귀와 영광 거두시옵소서. 

이제 고난은 결코 고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순절 고난의 절기가 끝나면 부활이 기다린다. 고난이 끝나면  영광의 부활이 우리를 맞는다. 주님의 고난은 영원한 영광으로 이어진다. 승리는 예비됐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영원한 승리와 영광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걷는 성도들은 복되고 복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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