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들과 함께 눈물흘리며 아파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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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들과 함께 눈물흘리며 아파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죠”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7.03.29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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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 이웃의 아픔 함께 나누는 '주민교회'

한국교회 소통의 현장을 찾아서 ⑤

▲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민교회는 신용협동조합과 의료생활협동조합, 외국인 노동자, 세월호 사태 등 각종 사회문제에 외면하지 않고 발벗고 나서며 지역사회와 소통을 지속했다.

평범한 주일 예배 시간,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민교회(담임:이훈삼 목사)에서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대표 기도자가 예배를 위한 기도와 함께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내용에 더욱 무게가 실린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설교가 이어진다.

강대상 뒤 대형 스크린에 설교 제목이 나타나고, 다음 장면으로 ‘인양된 세월호’ 사진이 나온다. 담임목사는 설교 서두에 약 5분 동안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본문을 설명한다. 설교 중간에도 여러 가지 사회 이슈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표명한다. 전체적으로 정치 참여적 성격이 강한 설교와 기도지만 교인들 중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다.


주민교회 이상락 권사는 늘 있는 일이자,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얘기한다. 이 권사는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이라며 “비록 교인 수는 많지 않지만, 주민교회 성도들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고 밝힌다.

사회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지난 27일. 흩뿌리는 비에 젖기 시작하는 성남 옛 시가지 구 시청 자리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깔끔한 느낌을 풍기는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주민교회는 4년 전에 현재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오랫동안 공동체를 꿈꾸던 주민교회는 전원적 공동체가 아니라 도시 공동체를 실험하기 위해 주상 복합 건물을 건축했다. 이 건물에 교회, 지역 단체, 그리고 주민들이 들어 살고 있다. 파편화된 도시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아직 실험 중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꼭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상락 권사는 “교회는 성도 수를 늘리는데 힘쓸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자, 시민들에게 복음도 전하는 선교 사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주민교회 성도들은 지역사회를 위해 앞장서고, 목소리를 내는 교회에 대해 그 누구도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주민교회에 몸담고 있는 성도들은 오히려 사회의 아픔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함께 활동한다.”고 말한다. 

▲ 지난 2년 동안 주민교회는 세월호 사태를 추모하는 시민단체와 함께 아픔을 나눴다. 교회는 올해도 시민들과 아픔을 나누며 위로하겠다고 밝혔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교회
주민교회는 목회자보다 성도들이 더욱 사회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3주기다. 성남시 시민단체들은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일주일 동안 역 앞에 분향소를 세우고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그 곁을 지켜왔다. 주민교회 성도들은 올해도 담임목사가 말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분향소 지키는 일을 담당하기로 했다.

세월호 사건 외에도 주민교회는 우리 사회의 불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해왔다. 자연스럽게 40여년의 역사 속에서 민주, 인권, 평화, 생명, 통일 등이 주민교회의 기도와 선교의 중요한 주제였다.

주민교회 이훈삼 목사는 “교회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점은 전체적으로 동의하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이 참 감사하다”며 “교회는 생명 평화 정의 선교에 더욱 많은 일을 펼치길 원하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사람과 돈)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아쉽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민교회는 여건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많은 일을 해냈다. 1970~80년대 지역주민들이 가난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갈 때 교회는 믿고 함께 살아가는 지역 운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교인 한 사람 당 1천 원 씩 출자하여 47,000원으로 시작한 주민신용협동조합이다. 자산이 전혀 없는 이들은 돈 빌리기도 힘 들어서 삶의 발전이 어려웠다. 이에 신협 운동을 통해 돈을 저축하고 대출하는 일을 시작했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위기를 넘긴 뒤 다시 반환하면서 월세자가 전세자가 되고 전세자가 자기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주민교회가 시작하여 사회로 환원한 주민신협은 2016년 기준으로 조합원이 15,000명이며, 자산은 2천 5백억 원 정도에 이르고 있다.

생명문화 창조를 위해 유기농을 생산하는 생산자와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를 연결하는 주민생협도 현재는 사회로 개방하여 교회가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기독교 선교 정신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의료 생협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민교회의 결과물이다. 2000년대 초반, 성남시 의료공백사태로 인해 아프고 병든 이들이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모습을 본 교회는 사회 시민단체와 함께 의료 생협을 만들었다.

모두가 치료 받을 권리를 제도화하기 위한 운동은 더욱 큰 결실로 이어졌다. 당시 같이 활동하던 이재명 변호사가 시장이 되어 구 시청 자리에 성남시 의료원을 짓게 된 것이다. 성남시 의료원은 2018년 완공 예정이며, 성남시민단체들은 건립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의료원 운영을 논의하고 있다.

이훈삼 목사는 “의료 생협의 정신에 기초하여 설립되고 있는 성남시 의료원은 가난한 이들에게도 의료의 손길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기독교 정신이 교회를 넘어 시 전체로 확장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시민들과 함께 걸어온 교회
주민교회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교회의 출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유신 정권 시절, 서울시 내 무허가 빈민촌 정리 계획에 따라 수많은 빈민들이 서울에서 광주 지역으로 쫓겨났다. 이들이 일으킨 경기도 광주 대단지 사건은 주민교회가 설립되는 계기가 됐다.

갑자기 서울에서 밀려난 이들은 달동네 꼭대기까지 천막을 치고 살았다. 이들은 여전히 서울로 가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교통편은 버스 한 대뿐이었고, 이마저 하루에 6대 밖에 운행하지 않았다. 이에 군중들은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5만여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 시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전태일의 분신에 이어 한국 민중들의 집단적 항거였으며 박정희 독재정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 사건을 보며 성남 지역이 민중의 현장임을 파악하고, 당시 故 박형규 목사, 권호경 목사 등이 몸담고 있던 수도권특수선교회에서는 이해학 전도사(원로목사)를 이곳에 파송했다. 이해학 전도사는 현장을 분석한 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활, 치료, 교육 등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그냥 이런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교회라고 고백하며 주민교회를 시작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급박한 요구에 응답한 결과가 신협, 생협, 공부방, 의료생협, 외국인 노동자 선교 등이었다. 현재 주민교회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돌보는 성남시외국인복지지원센터와 미등록이주민과 중국동포 쉼터를 운영하는 성남이주민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의 노인들에게 매일 무료급식을 하고 빨래를 해서 나눠주는 빨래방등을 담당하는 태평 3동 복지관을 책임지고 있다.

민주주의 근대화 시절을 함께 걸어온 주민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아픔과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목회자만의 뜻이 아니라 교인들 전체의 뜻이다.

이훈삼 목사는 “오늘날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은 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개혁해나가야 한다”며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성도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고 교회는 사회를 하나님 뜻으로 개혁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구원 역사의 한 부분이며, 그 역사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가까이 지켜보고 계시고 활동하고 계신다”며 “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직접 나가서 그 자리에서 함께 손을 내밀고 위로하며 하나님을 전해야 하는 것이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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