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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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가만히 있으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7.03.29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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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뉴스에서 세월호 인양 소식이 들렸다. 물 속에서의 오랜 부식으로 검은 그늘이 드리워진 것과 같은 세월호 모습은 3년 전 그날의 악몽을 꺼내놓게 만들었다.

사고가 발생할 당시 세월호에는 ‘가난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졌고, 이를 들은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은 선내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지난 27일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안산 합동분향소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수백 명의 어린 영혼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이렇게 어리고 예쁜 아이들이 왜 꿈을 펼칠 기회도 없이 사라져야만 했을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분향소 안은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한동안 큰 슬픔에 잠식되는 듯 했지만, 이제는 세월호를 말하는 것이 지겹다고 한다.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주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고 한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한국교회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분향소를 몇 번 왔다갔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예배의 인도를 부탁해도 이제는 교회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 어렵다며 거절하는 목회자들이 늘어갔다고 한다.

교회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제는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했으니, 제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눈물을 뒤로 하고 말이다.

비단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이 땅의 소외되고 아픈 자들을 위로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교회들이 줄어들고 있다. 꼬박꼬박 예배를 잘 드리고 봉사만 잘하면 믿음 좋은 청년이라는 말을 듣기 쉬운 교회가 됐다.

소외된 자, 아픈 자, 병든 자를 향해 가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마치 세월호 침몰 당시 울려 퍼졌던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교회 안에서도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의 가장 낮은 곳, 아픈 곳으로 향하신 예수님의 삶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아픈 자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교회가 늘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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