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 예수님의 마음을 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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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 예수님의 마음을 심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03.24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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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실로암 미션 아카데미’, 양향진 선교사
▲ 양향진 선교사는 가나 사역이 '자신의 자리'라 여기며 학교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아픔과 설움을 간직한 땅, 가나. 서아프리카 해변에 위치한 가나는 1957년 독립하기 전까지 무려 천년동안 서방국가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가나인은 여전히 노예로 억압당하던 아픔을 간직한 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 척박한 땅에서 사명을 품고 꿋꿋이 복음을 전하는 한국인 선교사가 있다.

양향진 선교사는 가나에서 ‘실로암 미션 아카데미’(Siloam Mission Academy)를 운영하고 있다. 6명으로 시작한 학교는 이제 220명 학생들이 가득 들어찼다. 유치원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모인 아이들은 가나 공용어인 영어로 수업을 들으며 태권도도 함께 배운다.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면 기독교식으로 교육해도 좋다는 각서를 써야 합니다. 학교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복음 전파라는 본래의 목적이 흐려져서는 안 되니까요. 아침 채플로 하루를 시작해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전교생 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심고 있습니다.”

맨 땅에서 시작한 학교가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여정은 쉽지 않았다. 2007년 개인사업을 하며 모은 돈으로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300km 떨어진 쿠마시에 학교 부지를 구입했다. 현재 중학교까지 시설이 완공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재정문제로 중단된 고등학교 공사가 끝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그는 안락한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다. 40대라는 늦은 나이에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당시 방학마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가나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 학교에 남아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한국행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머물러 있는데 연락을 받았어요. 고민이 많이 됐죠.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그곳은 내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길로 학교에 찾아가 ‘제자리가 아닙니다’라고 사양한 양 선교사는 목사 안수이후 본격적으로 가나에 정착해 지금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짓’이 ‘일상’인 나라, 가나

가나의 오랜 억압의 역사는 가나 전역에 위치한 ‘노예성’에서 잘 드러난다. 서방국가가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가며 중간 기착지로 사용했던 노예성은 가나에 54개소나 된다. 서쪽 황금해안의 ‘엘미나’라는 성을 통해 팔려간 노예의 수는 800만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노예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돼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억압의 긴 세월은 가나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이 문화가 되게 만들었다. 백인들은 노예관리를 위해 인도인을 중간관리자로 세웠는데 이들의 과잉충성이 문제가 됐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인정하면 그 자리에서 매질을 하고 총을 쏴 죽였다. 가나인에게 거짓말은 생존수단이었다.

“한번은 학교에 봉사하러 온 학생의 카메라가 없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훔칠 수 있는 사람은 정황상 경비 한사람뿐이었죠. 추궁을 하니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이름에 맹세코 훔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양 선교사는 가나인들이 거짓말이 ‘잘못된 일’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직원을 채용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받고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도 가장 먼저 정직을 가르친다.

또 하나, 억압의 시간이 가나인에게 준 영향은 낮은 자존감이다. 낮은 자존감은 복음의 장벽이나 변질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 가나 인구의 69%가 기독교인이지만 신실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아직도 선교사나 성직자는 돈이 많은 부자 정도로 인식된다고 한다.

▲ 백석대에서 온 단기선교팀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문화’를 만드는 교육, 실로암 미션 아카데미

이런 이유로 양 선교사는 문화를 만드는 교육에 주력한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정직을 가르치고 직원을 채용할 때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받는다. 거짓이 만연한 가나 땅에 정직한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돕고 있다.

앞으로 시작할 고등학교는 직업고등학교로 미용, 섬유가공, 요리, 자동차 정비 등을 가르칠 계획이다. 그는 기술을 익힌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가나 사회의 문화를 선도해 나갈 것을 기대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후원으로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길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우리 학교에서 기술을 익히고 전문성을 갖춘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 건전한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학교에는 양 선교사를 비롯해 아이들의 태권도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인 교사가 한 명, 현지인 교직원 26명이 일하고 있지만 추가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는 “현지에서는 믿고 일을 맡길만한 신실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면서 자신이 은퇴한 후 사역을 이어받을 후배들이 오지 않아 고민이라고 전했다.

“영어는 못해도 좋아요. 음악이나 기술 등 전문분야를 가르칠 수 있는 분이 필요합니다.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생명을 구하는 일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부르심을 받으신 분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양향진 선교사는 동역자 이야기를 하며 학교에 마련된 기숙사 사진을 보여줬다. 개인 책상부터 침대, 풍토병 예방을 위한 모기장까지 깔끔한 공간에 준비돼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에 오면 정글과 밀림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숙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특별한 곳에서 평범한 순종을

그는 학교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원주민교회 담임목사도 겸하고 있다. 주일이면 원주민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생 예배를 시작한다. 고등학교 과정이 시작되면 뜻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신학교를 여는 것도 준비 중이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에게 사역을 하며 힘들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선교사는 일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이에요. 편할 때가 없죠. 바쁜 일정에 치여 살다보면 어느새 지쳐 쓰러진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선교사임에도 오히려 영적인 고갈 상태에 놓일 때도 많아요.”

힘들고 지친 일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난다. 그는 선교지에서 으레 들려오는 기적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다가도 내 일에 몰두할 때면 잊어버리기도 하는 평범한 신앙인의 삶을 전했다. 아프리카라는 특수 사역지에 있지만 마치 국내에서 사역하듯 겸손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힘든 사역 중에도 예기치 않은 만남과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도 해요. 나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위로를 함께 경험하며, 그렇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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