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박힌 돌 ‘북한 트라우마’를 빼내라

탈북자 상처 치유로 통일의 문을 연다, 북한체제트라우마 치유상담센터 유혜란 대표 이성원 기자l승인2017.03.22l수정2017.03.22 17:31l13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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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반공교육’ 시대를 거쳐 온 사람이라면 한번 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는 악몽으로 밤잠을 설쳐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악몽이 언제 현실로 나타날지, 그 위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근 김정남이 살해된 사건과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가고 있다.

남한 사람에게조차 공포의 상처를 만들어 놓은 북한체제, 그러나 그 속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에겐 악몽이 아니라 아직도 ‘현실’이다. 북한에서 경험한 상처들이 트라우마(trauma)가 되어 새 삶을 영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트라우마란 영구적으로 마음에 장애를 남기는 정신적 외상 또는 충격을 말한다.

어린 시절에 받은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도 그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일이 이같은 경우다. 북한체제가 그러한 거대한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게 유혜란 목사(북한체제트라우마 치유상담센터 대표)의 해석이다.

▲ 북한에서 의사로서 편안한 생활을 하던 유혜란 목사는 북한의 실상을 겪게 된 사건을 통해서 탈북하여 남한에 오게 됐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탈북자들이 북한체제 아래 겪은 트라우마를 치유하여 우리 사회에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신앙생활과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돕고 있다.

거짓자아 만든 북한사회
“북한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기근과 체제 노이로제가 있어요. 북한체제는 김일성 일가를 ‘수령’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개처형을 비롯한 집단수용,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를 일삼아 거대한 감옥과 같은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겪은 공포와 불안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면서 북한체제가 집단적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탈북자들은 누구나 이런 트라우마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으면 ‘거짓 자아’가 생기게 되고, 자연히 대인관계가 원만할 수 없어 결국 한국 사회에 튼실하게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주 무섭고 폭력적인 부모 아래서 자란 자식들은 밝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기 힘듭니다. 북한은 3대가 세습한 정권이니, ‘가정’으로 보자면 얼마나 독재적인 가정입니까?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하면서 속다른 행동을 하게 되고 병리적인 방어기제가 반복되면서 그게 생리화되어 ‘거짓자아’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실제로는 그것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되레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유 목사는 북한체제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 역시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군부대병원의 의사였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층민들은 배급이 끊겨도 그와 같은 상층부 사람들은,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 특별한 혜택을 받아 식량공급이 원활했다. 당연히 탈북은 꿈도 꾸지 않았던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삼촌이 정치범으로 체포되면서 그의 부모님 역시 평양에서 함경북도 쪽으로 추방됐다.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전보를 받은 그는 친정집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긴 여정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그 여정이 새로운 인생길로 이어지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그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북한체제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어요. 기차가 정전이 나서 자주 멈췄기 때문에 아마 2, 3일은 걸렸던 것 같아요. 그 긴 시간 덕분에 북한체제를 다시 깊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저야 그동안 편히 살았기 때문에, 어렵다, 어렵다 해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거든요.”

기차에서 본 북한의 실상
기차의 창문엔 유리가 없었다. 배급이 끊어져 장마당에 나가 뭐라도 팔려는 사람들이 그 빈 창문으로 타고 내리곤 했다. 자기 또래의 여자들이 먹고 살겠다고 큰 짐을 지고 우악스럽게 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기차 지붕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험난한 산악지대에 굴이 많은 길 곳곳에 고압선이 늘어져있었다. 도중에 먹으려고 싸간 도시락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꽃제비’ 아이들의 퀭한 눈빛이 주변에 가득했다.

“엄청난 충격이었죠. 생전에 김일성이 ‘철도는 나라의 동맥’이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그것이 이 정도니, 동맥이 망가진 거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은 다 된 것 아닌가, 하는 절망에 빠져서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는 또 먹을 게 없어 풀죽을 쑤어 드시다가 풀독에 올라 퉁퉁 부어계셨습니다. 정말 희망을 잃었죠. 그때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겁니다.”

육신의 양식을 찾아서 떠난 여정이었는데, 끝에 도달해보니 그건 ‘영의 양식’을 구한 길이었다. 당연히 하나님도, 기독교도 알지 못했던 그는 칠흑같이 어둡고 험한 길을 떠나며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예배당에 가야 산다, 예배당에 가야 우리가 산다, 하면서 그를 신앙의 길로 인도했다. 삶과 죽음의 외길을 타고 가면서 그도 하나님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기적 같은 일들이 잇달았다.

“두만강 넘어 칭다오의 한 여인숙에 있을 때에 공안원들이 들이닥쳤어요. 이젠 끝이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려요. 구석에서 어머니가 기도하고 계신 거예요. 저도 할 줄 모르는 기도를 쏟아냈죠. 제발 도와주시라고요. 놀랍게도 복도가 잠잠해졌어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공안원들이 그냥 나갔어요.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엔 그때 일들이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을까, 하는 의심에 빠졌다. 그 역시 내면에 북한체제 트라우마가 있어 무엇이든지 쉽게 믿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보다 먼저 탈북한 남동생은 그런 기적을 체험한 적도 없었는데 성경말씀을 통해 확신에 찬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떼고 싶었던 탈북자 꼬리표
“북한에는 종교나 철학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탈북자들에게 신앙이 필요합니다. 나는 정말 누구일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왜 사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찾다 보면 결국 하나님 앞에 서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회자가 된 그는 현재 새중앙교회 북한선교부 담당 사역자로서, 또 사단법인 북한체제트라우마 치유상담센터의 대표로서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사실은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어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연세대에서 상담학 박사과정을 하면서 그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제 사명이라는 걸 깨달았죠. 저 역시 북한체제 트라우마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남한 사회에 소속되는 과정이 참 어렵고 장애가 많았거든요. 이제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파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북한에서 의사로 편안히 살아갈 수 있었던 그가 생사의 국경선을 넘어 남한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의학에 신학과 상담학까지 공부하도록 끌어당긴 힘은 무엇일까?

“이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북한체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탈북자들이 그 상처를 치유하고 이 사회에 적응을 잘해서 장차 ‘통일의 자원’이 되는 일에 하나님이 쓰시려고 저를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회가 탈북자들을 대할 때에 이런 북한체제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좀 더 관용과 긍휼의 마음으로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성원 기자  jos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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