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조건없는’ 사랑이죠”

거리 청소년들에게 밥과 사랑 주는 상계감리교회 ‘러브 투게더’ 이인창 기자l승인2017.03.16 10:46:46l수정2017.03.16 11:04l19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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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감리교회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거리 청소년들을 위한 식당 '러브 투게더'를 연다.

전광판 불빛 뒤로 사라져가는 소녀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노원구청 앞 4차선 도로를 당당하게 무단횡단 하는 태도가 어이없게 생각되면서도 왠지 웅크린 어깨가 안쓰럽다. 그래도 저 아이들은 조금 전 세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라는 위안이 든다.

서울 노원구청과 인접한 보건소 앞마당에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면 천막 식당이 열린다. 이곳을 거리에서 배회하는 청소년들이 찾아오고 있다. 상계감리교회(담임:서길원 목사)가 2014년부터 노원구청과 노원경찰서와 같이 여는 ‘러브 투게더’ 심야식당이다. 

지난 10일 기자는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노원구청으로 달려갔다. 곧이어 도착한 ‘러브 투게더’ 봉사팀과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내친김에 장갑을 빌려 1톤 탑차에서 나오는 천막과 식탁, 음식 등을 함께 날랐다. 능숙하게 맞춰진 봉사팀 호흡에 방해만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늘었다. 

“오~~ 목사님 왠 양복?” 짙은 화장에 몸에 착 감긴 바지를 입고 천막을 걷어내며 등장하는 여인들이 익숙한 듯 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상계감리교회 이현우 목사에게 농담을 건넨다. 자세히 보니 아직은 앳된 고등학생들이다. 아이들은 교회 행사가 있어 좀 차려입은 이 목사를 놀리는 것이다.

이 목사는 천막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춥지? 얼른 밥 먹어라”라고 채근한다. 오늘 주 메뉴는 교회식당에서 만들어온 진한 국물의 닭볶음탕과 구수한 된장국이다. 싱싱한 딸기와 과자는 후식. 곧이어 덩치가 산만한 남자 아이들이 껄렁거리며 등장한다. 거친 표정과 치렁대는 피어싱 악세사리, 덤으로 따라온 담배냄새가 기자를 멈칫하게 했다. 

‘러브 투게더’에는 거리에서 좀 논다(?)는 아이들이 찾아온다고 알고 있었다. 막상 대하자니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곳 봉사자들은 좀 다르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건넨다. 아이들도 꼬박꼬박 존대를 하면서 마음을 여는 태도에 자연스럽게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 '러브 투게더'는 밥을 먹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거리 청소년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현장이다.

거리 청소년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
상계감리교회는 평소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예배당을 개방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에 찾아와 몰래 잠을 자고 가는 청소년들이 생겼다.

서길원 담임목사는 청소년들이 남기고 간 담배꽁초와 함께 위장약이 떨어져 있는 것을 유심히 살펴봤다. 위장약은 자주 발견됐다. 그리고 거리 청소년들이 밥을 제때 먹지 못해 속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곧 관내 청소년 기관들과 협의를 시작해 문을 연 것이 심야식당이고 ‘러브 투게더’ 사역이었다. 특히 노원구청과 노원역 사이 인근에는 서울의 북동쪽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나름의 요충지이다.

심야식당을 열었다고 청소년들이 그냥 찾아올까? 중요한 것은 신뢰였다. 하나 둘씩 찾아온 청소년들과 봉사자들이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다른 청소년들에게 쉼터라는 인식이 전해졌다. 청소년들도 각자의 사연은 있다. 사춘기 질풍노도를 겪는 것일 수 있지만 정작 본인조차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여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 아이들을 품는 사람들이 ‘러브 투게더’ 심야식당에 있는 것이다. 

“저희는 식당에서 훈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사랑을 받고 싶어서이거든요.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면 또 다른 잔소리가 될 겁니다. 주로 칭찬을 많이 하면서 그저 예수님 사랑을 나눠주려고 노력합니다”

봉사자들은 가능한 청소년들에게 존대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래도 내 자식 같아서 어쩔 수 없는지 연령이 있는 봉사자들은 편안하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청소년들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서로 적응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심야식당을 시작할 때부터 활동하고 있다는 양재범 권사는 “처음에는 살벌했어요. 아이들도 자기들 영역이 있어서 식당에서 서로 심하게 욕설도 하고 충돌도 있었지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니까 그 마음을 알아주더라고요”라며 그간 소회를 풀어놓았다.

심야식당, ‘만남’과 ‘소통’의 정류장
청소년들이 찾아오는 2동 짜리 좁은 천막 안에서 3시간 동안 머물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특징은 이곳이 소통을 위한 정류장이라는 사실이다. 심야식당에 봉사자들이 있고, 재능기부자들이 찾아와 청소년들과 함께한다.

‘학업숙려제’에 따라 위기청소년 상담 활동을 하고 있는 복혜진 상담사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하고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은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주로 PC방과 만화방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만나 상담을 한다. 그런 복혜진 상담사에게 심야식당은 상담도 하고 아이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노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소속의 문정호 형사는 학교폭력 전담경찰관이다. 문 형사는 상계감리교회 권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야식당에서 학생들과 끊임없이 인사하고 대화하면서 청소년을 돕는 본업도 이어가고 있다. 얼핏 넘겨다본 문 형사의 핸드폰에는 2백명 가까이 학생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이날도 문 형사는 처음 얼굴을 본 청소년들에게 농담하며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건넨다. 무언가 이끌리듯 자신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식당에 오면 아이들을 만나는 접점이 생기는 겁니다. 나를 낮춰서 다가가면 마음을 열어요. 권위를 허물고 인격적으로 대하면 마음에 지고 있는 고민들을 풀어놓습니다.”  

문 형사는 그렇게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가정으로 돌려보낸 사례가 아주 많다. 노원구 뿐 아니라 멀리 김해, 여수 등에서 온 아이들도 가족 품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찾아내 장학단체와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부모들이 가출한 자녀를 찾기 위해 소문을 듣고 달려오기도 한다. 부모가 왔다면 아예 숨을까봐 먼 발치에서 자녀를 확인하고 위안을 삼는 모습에는 안타까움도 크다. 그러나 심야식당 ‘정거장’을 정기적으로 들른다는 사실이 이 부모들에게는 희망이 된다. 아이와 소통이 가능해질 때쯤이면 봉사팀 이현우 목사는 부모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 식당을 찾은 청소년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쉼을 얻는 중이다. 거칠 것 같은 청소년들의 오히려 수줍은 태도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심야식당’을 찾는 이유요?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져 집을 나왔다는 올해 열 여덟살의 이유진 양(가명)은 중학교 2학 때 자퇴했다.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며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보통 하루에 한끼를 먹을까말까 한다는 이 양에게 심야식당 ‘러브투게더’는 집 같이 편안한 곳이다. 매주 친구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 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목사님도 있어서 고민이 있으면 항상 여기에 와서 이야기해요. 고민을 털어놓고 말할 곳이 거의 없는데 이곳에서는 가능하거든요. 꿈이요? 웃지 마세요. 전 변호사가 될 거예요.”

웃지 않았다. 섣부른 조언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청소년들은 문제해결을 바라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찾는 것이었다. 

심야식당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말을 건네면 어김없이 수줍어했다. 눈도 잘 맞추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보이고 싶은지 옆 친구에게 과장된 몸짓과 욕설을 섞는다. 어색한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처음 외향적으로 풍겼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다르다. 어쩌면 어른들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거리 청소년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자가 그런 어른은 아닌지 괜시리 미안한 감정도 든다.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심야식당 단골손님 김경민 군(가명)은 몸이 아픈 여자친구와 심야식당을 찾았다. 2~3주 동안 여자친구가 아픈 것을 유심히 지켜본 이현우 목사는 바로 인근 협력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했고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 이 목사는 상담 끝에 부모님과 대화를 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안내했다. 청소년들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문제, 유심히 지켜봐준 어른 때문에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10일 밤 심야식당 천막 안에서는 따뜻한 조명 아래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상계감리교회 청년들이 노래를 시작했고, 어느새 주변에 모인 청소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끝 모를 노래들을 함께 불렀다. 중간 중간 아이들은 밖을 오갔다. 틀림없이 담배 한 대 피우고 왔을 것이다. 모두가 알지만 어른들은 기다린다. 상첩다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 그것은 ‘기다림’과 ‘헤아림’이었다 .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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