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북한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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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북한 사람 이야기
  • 김창범 목사
  • 승인 2017.03.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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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의 북한통신 (46)

위험한 선교 현장만 바라보는 필자는 때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얘기가 듣고 싶다. 탈북자들이 들려주는 북한 현실을 접하면서 북한에는 보통 사람이 살지 않는 비극적인 곳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하지만 흔히 만나는 이웃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사는 평범한 일상이 북한에는 없는 것일까? 북한 권력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통제된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실제 모습은 만날 수 없는 걸까?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전해 듣는 기회를 가졌다. 따뜻한 북한 얘기를 전한 사람은 북한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존 에버라드(58) 씨이다.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평양 경험담을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2014)이란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그는 2006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약 900일 간의 평양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아사 직전의 사람들이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평양이라는 특별한 구역에 살도록 허용된, 소위 김정일 시대에 출세한 특권층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평범하지는 않지만, 권력의 틀 안에서 비교적 신분이 보장된 안전한 생활을 누리는 평양의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과 만나 개인적으로 나눈 이야기들이다. 

그가 역임한 영국대사직은 대단한 직책임에 틀림없지만, 평양에 있는 여러 나라 대사관처럼 그 역시 별로 할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양국의 돈독한 관계를 상징하는 외교관이라는 신분만으로 최고 지도자를 기쁘게 해줄 뿐이었는데, 이것이 그의 주요한 직무였다고 한다. 그 덕에 그는 많은 시간을 소일하기 위해, 평양 시내와 변두리를 자전거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는 거기서 철저히 통제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지구상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들도 역시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전한다. 

그가 전하는 얘기들은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 휴대폰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입소문만큼 정확하고 빠른 수단은 없었다고 한다. 몇 사람을 거쳐 전해진 소문이지만 정확성에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는 결코 길게 얘기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만 맞으면 몇 시간이라도 녹차를 마시며 얘기를 즐긴다. 어쩌면 진실과 친절에 굶주려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자리가 평양 사람들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자본주의의 바쁜 일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그들은 아주 보수적이며 예의바르지만, 국가적 위신과 체면이 상하는 일에는 불같이 나선다. 이들은 모종의 우월감으로 가득했다.  

평양 변두리를 비롯해 북한 전역은 전혀 개발되지 않아 환경이 아주 깨끗한 편이다. 공장도 거의 문을 닫았으니 공해물질이 배출될 곳이 없다. 그래서 어디서나 밤에 별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온하지만, 평양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평양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그것은 갑자기 의식주가 끊기고 인간관계가 모조리 단절되는 가장 비참한 일을 겪게 한다. 그리고 개혁, 개방을 두려워한다. 그동안 권력에 의지하여 살아온 모든 특권이 사라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평양사람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한다.

그는 그들과 교류하면서 두 가지의 ‘평양 현상’을 느꼈다고 한다. 첫째는 평양 정권이 분명히 노쇠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 정보들을 통제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둘째는 더 나은 세상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평양에서도 확연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가져올 북한의 미래를 누구나 그릴 수 있지 않겠는가? 짧은 기간이지만, 외교관으로서 그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순수하고 정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평양이라는 화려한 짐승의 우리에 갇혀 사는 저 순진한 사람들이 그립다고 그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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