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널 위해 연주하네 … ‘힐링 연주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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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널 위해 연주하네 … ‘힐링 연주자’의 꿈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7.03.0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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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세상에 바이올린 연주자는 많지만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내는 소리는 다르다. 그녀가 내는 소리는 악기에서만 나지 않는다. 그녀가 활이 된다. 그녀의 삶이 바이올린을 켠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끊어지고 찢겨지는 듯 활이 역동한다. 아픈 상처의 정서도 다시 일어나지만, 동시에 그 우울증을 낫게 했던 은혜가 그녀를 압도한다. 그 음악이 ‘나’를 위로한다. 

그녀의 소리가 남다른 이유가 또 있다. 그녀는 TV 프로그램 ‘스타킹’에서 가요 ‘무조건’을 간드러지게 켜는가 하면,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TED에서 인상 깊게 자기의 이야기를 연주하고, 미국의 지도층 인사 5,000명이 참석한 최대 규모 콘퍼런스에서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기립박수를 받고, 청송교도소 푸른 옷들 앞에서 ‘치고이너바이젠’을 연주하며, 주일 교회에서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로 심금을 울린다.

▲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었던 박지혜는 어린 나이에 계속된 콩쿠르와 오디션으로 피폐해져 우울증의 수렁에 빠졌지만 찬양 연주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체험한 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연주자’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정통 클래식과 대중 무대에서 나눔과 융합의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신앙과 음악을 물려받다
무대를 가리지 않는 그녀는 그러나 국제 콩쿨에서 부심사위원장으로 초대받은 정통 클래식 연주자. 최근 유니버설 뮤직에서 내놓은 클래식 앨범이 골든 디스크가 되고, 올해도 파리, 이태리, 뉴욕, 헬싱키, 도쿄 등 상반기까지 무대공연 스케줄이 잡혀있다. 다만 박지혜는 어렸을 적부터 소원했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융합의 시대잖아요. 클래식하시는 분들도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려고 많이들 하십니다. 그게 쉽지는 않은데, 전 감사하게도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고 또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저는 분명히 클래식 연주자지만 그러나 클래식을 더 잘 들려주려면 듣는 분의 귀를 열어줘야 하거든요. 그 접촉점이 제 삶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많이 아는 노래일수도 있어요. 그 후에는 진정한 클래식, 코어클래식을 연주해도 소화가 되는 느낌이에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로부터 두 가지 유산을 물려받았다. 음악과 신앙. 이 둘은 박지혜에게 뗄 수 없는 삶, 그 자체다. 항상 바빴던 어머니는 자기와 놀아달라는 딸 지혜에게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항상 네 곁에 계신 분이다, 하나님께 놀아 달라’ 하라고 했다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었던 꼬마 박지혜, 그 후로 한번도 하나님을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독일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잡은 후, 바이올린은 그녀의 전부가 됐다. 운지하는 손가락이 여린 여자 아이의 것이라 보기 힘들 만큼 아프게 보일 정도로 어떤 날은 하루 열여섯 시간을 바이올린을 붙들고 연습했다.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비롯한 여러 상들을 받았고, 수십 억 짜리 과르니에리 바이올린을 평생 쓸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잊을 수 없는 힘겨운 시절도 따라왔다. 독일 음악계에서 거장 울프 휠셔의 지도로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음악대학교에서 최고 연주자과정을 하던 때였다.

스물두 살에 ‘유작앨범’
“새벽에도 아침에도 바이올린 소리가 늘 들리니까, 지나가던 학생들은 제가 살던 집을 가리켜 바이올린에 미친 사람이 살고 있다고 봤어요. 그런데 정말 그때 저는 미쳐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두운 방안에서 웅크리며 사람도 안 만나고 연습도 안하고 뭘 먹으려고 하지도 않고.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꿈이 강박관념이 되고 그게 병이 됐던 것 같아요.”

우울증이었다. 의사는 돌연사할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내렸다. 그건 사형선고였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힘든데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니, 앞이 캄캄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모태신앙인으로서 오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며 전력질주 하다, 어느 순간 우울증의 수렁에 빠졌을 때의 그 황망한 고통.

“그때 엄마는 처절한 기도를 하셨죠. 기도하다가 지치면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찬양을 틀어놓고 들으시고 흐느끼듯 따라 부르시곤 했어요. 저도 많은 위로가 됐어요. 우울증 걸렸을 때는 누구의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음악은 달랐어요. 그때 엄마가 뭐라도 하나 남기자고 하시며 찬양 CD를 만들자고 하셨죠.”

▲ 청송교도소 공연

그래서 나온 찬송가 연주 음반 ‘홀리 로드’는 사실 유작앨범이었다. 요즘 그녀가 교회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바로 이 ‘유작앨범’에 실린 찬양들이었다. 누구에게 들려주기보다는, 사실 그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들었던 찬양이었고, 연주했던 노래였다. 그 찬양CD가 계기가 되어 교회의 초청을 받아 연주를 하게 됐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었다.

“교회에서 연주를 한 것이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는 계기가 됐어요. 찬양을 연주하면서 회복이 되고 더 큰 꿈을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교회에서 공연을 한 다음날이면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았어요. 살아있다고 느껴졌고요. 제 연주를 듣고 자살하려다가, 삶을 포기했다가 다시 희망을 얻었다는 고백도 들으면서 제 삶도 달라지게 됐죠.”

그녀를 가르쳤던 울프 휠셔 교수는 종종 이런 조언을 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하지마. 그러면 기계적으로 변하거든. 지혜가 가진 음악성은 독특하고 귀한 거야. 너무 연습에 매달리면 그 개성을 오히려 잃게 돼.’ 

너무 연습에만 매달리고, 콩쿠르에 자주 나가 경쟁에 익숙해지면, ‘보편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완벽주의자였던 그녀로선, 어쩌면 그럴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처절한 경험이었던 우울증이 오히려 그녀에게 남다른 음색을 갖게 한 상처이자, 사명이 됐는지 모른다. 그녀는 최근 ‘당신을 위한 음악이 나를 위로하네’(시공사)라는 책을 냈다.

하나님이 주신 음악의 힘
“요즘 사회가 불안하고 절망적인 일들이 많잖아요. 다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요, 제 음악으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어요. 제 자신이 우울증으로 힘들었을 때에 위로가 되어준 게 음악이거든요. 따뜻하고 희망을 주는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도 달라지게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대중적인 무대에 설 때에 세컨드 바이올린을 가지고 가라고 한다. 그러나 박지혜는 모든 청중에게, 낮은 무대이든지 높은 무대이든지, 제일 좋은 걸 드리고 싶어 한다. 오히려 클래식 공연에 익숙지 못한 분들이야말로 1735년 산 과르니에리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도 때론 맘 상할 때가 있다. 재능기부를 원하는 자선단체 등에서 무리하게 공연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녀의 사정과 형편을 무시한 채, ‘당연히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다’는 투로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녀를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교회에서 연주할 때도 곤란한 점이 있다. 교회 마이크 시스템이 대개 설교자 위주로 세팅되어 있어 바이올린 연주를 위한 세팅이 따로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전문적인 인력과 장비를 준비해 가지만, 종종 교회 음향 관계자들이 협조하지 않을 때가 있다. 최고의 연주와 악기라도 마이크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음향 조절이 필요하다. 그녀는 늘 최상의 것을 드리고 싶어 한다.

올해는 그 동안 클래식 공연에서 소외된 지방에도 더 많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있는 소속사 혜화JHP가 정부에서 공연 지원을 받는 ‘방방곡곡’이라는 프로그램에 1200개 기획사 중에서 뽑혔어요. 요즘 우리나라가 많이 힘들잖아요. 음악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 힘내자, 외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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