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출신 대화의 장…“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소통”

한국교회 소통의 현장을 찾아서 ② 인천 논현역사 내 카페 '이음' 이인창 기자l승인2017.03.07l수정2017.03.13 10:50l1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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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이음'은 남북한 출신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는 현장이다. 같은 일하며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사진은 이경숙 실장과 신영욱 목사)

남북한 출신 함께 근무하는 색다른 커피가게 

온통 소통이다. 수인선 인천 논현역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주하는 카페 ‘이음’ 안은 온통 소통이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사람들이 카페 문을 열면 편안함과 마주하게 된다. 카페 내부는 여느 동네 카페와 다르지 않다. 목재가구와 큰 파라솔, 화초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 

맛을 보니 꽤 맛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 가격이 2년째 1,500원이다. 카페 ‘이음’ 대표를 맡고 있는 예사랑선교회 대표 신영욱 목사는 논현역을 찾는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따뜻한 카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가격을 내렸다. 올 2월에는 꼭 올린다는 것이 3월 초까지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 원두는 국내 제1호 사회적협동조합 ‘카페 오 아시아’가 공동구매하는 상품을 공급받고 있었다. 이런 내용을 손님들에게 설명하지 않는 한 알기는 어렵다. 신 목사는 카페를 찾아와 그저 편안히 대화하고 쉬었다 가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카페 ‘이음’에는 커피 맛보다 더 특별한 소통이  있다. 이 안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북한에서 넘어와 정착한 주민, 남한 사회에서 나고 자란 주민이라는 사실이다. 커피를 내리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며 서로를 이해하고 적응해가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3일은 북에서 온 직원은 몸이 좋지 않아 이른 퇴근을 했다. 혼자서 일하는 이경숙 실장은 50대 중반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밝은 모습으로 능숙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면서도 커피를 내리는 솜씨에는 자신감이 묻어있다. 

“카페 이음에서 일하는 우리 직원들은 일반 카페 같으면 취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더 애착을 갖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북에서 온 직원과 일하다보면 맞지 않을 때도 있고, 의식의 소통이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거지요.”

실제 카페 ‘이음’은 탈북한 주민들 중에서도 반드시 일자리가 필요한 주민들을 위주로 선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카페 ‘이음’은 논현역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영욱 목사는 6년 전 카페 ‘이음’을 처음 시작했고 현재는 ‘소래포구역’과 ‘동인천역’, ‘인천항’까지 4곳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신 목사는 기본적으로 카페 직원들은 탈북민과 남한주민, 다문화 이주여성이 함께 일하도록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현재는 한 점포에서만 이 조건에 따라 세 사람이 근무하고 있고, 나머지 세 점포는 남북 출신 직원 두 사람이 근무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카페 안쪽에는 또 다른 공간이 나온다. 세미나실이기도 하고 회의실이기도 한 널직한 곳. 이곳에는 북한이탈주민과 결혼이주여성, 남한 누구나가 와서 ‘바리스타’와 ‘가죽공예’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업교육, 창업교육의 현장이다. 

또 매월 북한 출신과 남한 출신이 다양한 주제를 갖고 토론하는 ‘남북시민마당’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시민마당에서 쟁점을 두고 토론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남북한 출신 20~30여명이 매월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있다. 

▲ 남북한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함께 근무하면서 소통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카페에서는 바리스타 교육과 가죽공예 과정을 운영하며 직업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북에서 오신 분, 남한 사람, 결혼이주여성
카페 ‘이음’ 안에서 이처럼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것은 물론 예사랑선교회 대표 신영욱 목사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한사코 만류했던 그다. 여러번 설득한 끝에 커피나 한 잔 마시러 가겠다고 찾아와 자연스럽게 대화는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통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한 의지가 중요함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북에서 오신 분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북에서 오신 분들은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죠. 경험과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신영욱 목사는 탈북민이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다. 경계를 나누는 것 같아서 그는 ‘북에서 오신 분’이란 말을 길어도 굳이 사용한다. 신 목사는 북에서 오신 분들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 카페 '이음'은 논현역사를 찾는 누구나가 들어와 쉴 수 있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카페 내에는 북한에서 넘어온 공익사업가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 판매될 수 있도록 최근 매대도 설치했다.

카페 ‘이음’ 다른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올해 남한생활 11년차 김선순 씨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다. 그는 처음 신 목사의 이런 사역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에선 경험해볼 수 없는 사람이어서일 것이다. 

“목사님을 이제는 이해하게 됐습니다. 매장에 직원을 배치할 때도 서로 소통하라고 뜻에 맞춰 하세요. 가능한 보듬어주고 어떻게든 품어주려고 하시는 모습에 이제는 이해합니다.”

김 씨가 처음 카페에서 일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북에서 쓰던 용어나 사투리가 불쑥 나오는 것보다 힘들었던 건 손님 중심의 서비스업 자체였다. 보통의 카페라면 판매자 중심의 생각을 가진 직원을 가만 놔두었을까. 그러나 신 목사는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남북한 출신이 같이 일하다보면  생각하고 행동하는 차이가 커 갈등을 겪기도 한다.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결국 서로의 차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임을 인정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카페 수익률은 어떨까. 올해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하는 신 목사. 지금까지 오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는 마진을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요. 금년에는 1~2개 매장을 더 늘려 일자리를 만들고 싶은데 늘 재정이 문제입니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돼 정부 지원금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가 안일해지는 것 같아 5개월만에 반납한 적도 있죠. 우리 힘대로 해보고 안 되면 문을 닫자는 각오였습니다.”

그리고 버텨냈다. 자생력이 생긴 것이다. 그간의 적자들이 메워진 것은 은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 신영욱 목사는 경계를 만드는 것 같아 탈북민들을 '북에서 오신 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3년전 말기암 수술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새 삶을 주셨다는 그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기업가 출신 늦깍이 신학생, 하나님 계획 

신영욱 목사는 카페 ‘이음’의 대표이면서 예사랑선교회, 외국인희망이주센터를 책임지는 사역자이다. 여러 타이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그를 위해 열어주신 고생길이다. 신 목사는 쉰 가까이 되어서야 신학을 공부한 늦깎이 목회자였다. 
젊어서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도 일했다. 자신의 사업을 일궜고, 베트남에서는 직원 2,000명까지 둔 기업가였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었다. 한국에서 사업할 당시 부도를 경험한 적이 있을 때 미션스쿨 대광고에서 배웠던 예수님이 생각나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 만난 하나님이었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졌을 때 그는 베트남에서 사업규모를 줄이고 홀로 한국에 들어와 백석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우연히 실천신학 과목 중 안산 외국인근로자들을 만나게 됐고 그것을 계기로 그 사역 현장에 몸을 던졌다. 개인사업은 아예 중단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구타당하고 임금체불은 예삿일이고 사고를 당해도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는 회사들이 많을 때였습니다. 또 다른 교회를 세우려고 주님이 저를 부르시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신 목사는 30명 교인의 개척교회를 사임하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선교회를 인천 남동공단 안에서 찾았다. 돈도 벌어야 해서 여러 공장에 경비직 원서를 접수했다. 회사들은 감당할 수 없는 이력이라며 채용해주지 않았다. 다행히 남동공단 기업 중 한곳의 이사로 들어가게 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어느날 외국인 근로자 예배에 북한 출신 근로자가 찾아왔다. 북에서 온 사람은 처음 만난 것이다. 이유인즉슨 남한 사람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이를 눈여겨본 외국인 근로자가 예배에 데려온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북한 출신들을 위한 그의 사역의 새 길이 열린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는 탈북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신영욱 목사는 지난 2014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해도 병원에서 말한 생존확률이 10%도 안됐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려주셨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카페를 창업해 2년 생존율이 40%밖에 안되는데도 6년을 넘게 버티게 하신 것. 매월 적자가 200~300만원일 때도 카페 ‘이음’에서 남과 북, 타국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더 만나서 소통의 징검다리가 되라는 뜻이 있을 것이다.

그 소통이 궁금하다면 인천 논현역을 찾아 카페 ‘이음’의 문을 열어보시라.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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