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신(44)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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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신(44)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
  • 김창범 목사
  • 승인 2017.02.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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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목사 / 더미션로드 대표

북한 근로자들은 가끔씩 인편으로 오는 서신에 목을 맨다. 당에서 관리하는 정기적인 우편물 배달이 있지만, 근로자들은 이것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서신의 내용이 철저하게 검열되기 때문에 하나마나한 소식통이라고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근로자들은 저마다 자기 방법을 찾아 이용한다. 대개는 평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통해 은밀하게 전달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송금하는 인편을 통해 서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게 마련이다. 통상 열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신을 전달하는 사람은 위험한 여행을 각오해야 한다. 서신이 곧바로 전달되기도 하지만 대개 한 두 사람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걸린다. 

고향에서 보내온 서신의 봉투를 기쁨으로 뜯는 강영한(43, 가명) 씨의 손은 떨린다. “철이 아빠에게 보냅니다.”라는 첫 구절을 읽으면서 벌써 평양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를 느낀다. 독특한 억양과 음색까지 또렷이 기억이 나 가슴이 뛴다. 편지를 받아본 지가 넉 달이 넘는다. 아프다던 막내는 건강한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내는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궁금한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편지를 보다가 갑자기 그는 울컥 흐느끼며 편지에 자신의 얼굴을 묻는다. “야, 보고 싶구나.”하고 가만히 속삭인다. 5살 막내가 자기 손바닥과 발바닥의 윤곽을 흰 종이에 그려놓았다.
“아빠”하고 금방이라도 안겨들 것 같이 귀여운 막내 딸 얼굴이 떠오른다. 

편지에는 온갖 사연이 담겨있지만, 중심 내용은 건강과 경제 문제로 귀결된다. 서로가 힘들지만, 용기를 내자는 격려의 말이 넘친다. 혹시라도 서신이 발각될지도 모르니, 당과 수령에 대한 열렬한 존경과 감사를 보내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아무리 쥐꼬리 같은 돈이라도 북한에서는 큰 돈이므로 집에서는 그 돈을 학수고대 한다. 북한 근로자들이 러시아나 중동 땅에서 온갖 고생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침묵으로 견디는 이유가 오로지 고향의 가족 때문인 것이다. 당에 상납금을 바쳐야 하는 것 외에도, 수단 방법을 다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북한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가족의 외침이 편지 가운데 넘쳐난다. 북한 상황이 어려우니 들어오지 말고 그곳에서 살며 생활비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당신마저 북한에 들어오면 우리 가족은 뭘 먹고 살겠는가”라고 묻는다. 근로자들은 당장 탈북을 원하지만, 한국에 입국하는 절차와 과정에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기간에 가족의 생계는 어찌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작 탈북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이 시간, 북한 전역에서는 제2의 고난의 대행군이 진행되고 있다. 굶주림의 상황이 지난번 고난의 대행군과는 다르지만 심각성은 더 크다고 한다. 평양에서도 아사의 위험이 높다고 한다. 상층부 외에는 배급제도가 거의 망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평양에 인적 연결고리가 없는 지방 출신의 주민들은 자급자족할 방법이 없어 절망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풀죽이라도 끓여야 할 처지인 것이다. 장마당이 있지만, 시장경쟁은 더 치열하여 틈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가족이 전해주는 고난의 소식은 근로자들의 마음을 더욱 처참하게 만든다. 

달아날 수도 없는 근로자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복음뿐이다. 해외 근로현장으로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강력하고 현실적인 도움은 없다. 북한선교사들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향의 서신보다 더 강력하고 확실한 소식, 그것은 주님이 보내시는 생명의 소식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고향의 가족도 어떻게 책임져주시는가를 알려주는 것보다 이들에게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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