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소외자들과 선교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상태바
헌금은 소외자들과 선교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 운영자
  • 승인 2017.02.28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1. 베드로 사원 성전 건축
82조항은 루터 파문(破門)에 빌미를 제공한 논제이다. 직접적으로 신성불가침의 교황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루터는 82조항에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 동기가 “거룩한 사랑을 위하여,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처지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선적이며 가장 타당한 이유를 제쳐두고” “성당 건축을 위해 바치는 돈을 받고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방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루터는 교황이 어찌하여 돈을 받아야만 사면권을 행하느냐고 공적 질문을 제기한다.

2. 돈 받고 속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루터는 84조항에서 “하나님과 교황의 거룩함이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불경건하고 반역하는 자들이 경건하고 사랑받는 영혼들의 어려운 처지를 위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무상으로 속량하지 않으면서 돈을 받고는 같은 영혼들을 속량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허용되는 것일까”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을 전혀 공경하지도 않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면죄부만 구입하면 죄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면죄부 판매는 무의미하다고 천명한다.

3. 아름답지 못한 행위
루터는 86조항에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라고 비난한다. 
당시 교황은 주전 6세기 큰 부자왕 크리서스(Croesus)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 그런데 교황은 그런 자신의 재산으로 성전을 수축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돈으로 짓는 것은 결코 교회의 수장(首長) 답지 못하며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4. 면죄부를 사도록 하는 것
루터는 87조항에서 “교황은 완전한 통회(痛悔)를 통해서 충분한 사면과 속죄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어서 무엇을 사하려고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이것은 공교회의 거룩한 참회를 시장의 속물(俗物) 상업주의로 바꾸는 것이다.

5. 바람직한 죄사함과 위로
루터는 88조항에서 “교황이 각 신자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 번 주는 것을 만일 하루에 백 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는 더 큰 축복이 된다”고 천명한다. 사면과 은총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것이며, 이는 값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믿고 참회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6. 면죄부를 파는 것은 옳지 않다
루터는 89조항에서 “교황이 면죄부를 수여하는 것은 그 목적이 돈이 아니라 영혼을 구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래 전에 주었던 증서나 면죄증을 왜 무효가 되게 만드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예전의 증서나 면죄증도 면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을 무효화는 것은 교회 권위에 대한 자가당착이다. 중세 말기에 가장 왜곡된 일은 돈으로 면죄부를 구매하게 하여, 하나님께 선행이 부족하거나, 죄를 회개하지 못하였거나 고해성사를 다하지 못한 이들을 사면했고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돕도록 한 것이다. 면죄부 판매자들은 죄를 회개하라고 자극을 하거나, 어찌하든지 면죄부를 많이 사도록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러면 죄값을 치르는 면죄부가 많이 판매되었다. 면죄부는 명복을 빌기 위한 연보를 드리는 것에 해당한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서 혹은 살아있는 자의 미사를 위해서 돈을 내는 것은 경건한 일이 아니라 속물거리다.

7. 소외자들과 선교 위한 헌금 사용
한국교회는 교회 헌금을 자체 운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선교와 사회의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제도권에 자리 잡으면서 중산층이나 사회적 특권층을 위한 모임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저소득층이나 변두리에 있는 자들이 교회에 발을 들이기가 어렵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일부는 호화로운 교회당이나 교육관 건축에 막대한 헌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비성경적으로서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며, 세상의 작은 자들과 함께하는 도피처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헌금도 자체 운영이나 해외선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지역사회의 소외자들과 생계가 어려운 자들을 위한 구제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약 2:5~6). 
한국교회는 지역의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선교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종족에게 전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은 사회를 향한 헌신적인 봉사에 평신도들에게 솔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