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그날과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상태바
3.1운동 그날과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 운영자
  • 승인 2017.02.22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시영 대표회장 / 사)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1. 3. 1운동의 역사적 의의
 역사학자 200명에게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80%가 3.1운동이라고 대답했다. 좀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지만 3.1운동이 우리 민족사에 큰 사건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3.1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이 운동 결과 일본이 망한 것도 아니고, 조선이 독립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성공했다. 

임시정부가 생겨나는 원동력이 되었고, 비폭력운동으로서 세계에 우리의 존재를 증명했으며,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나면서 백성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개념이 변하면서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했다, 왕을 위한 궐기가 아니라 민족 자결주의 영향 속에서 민족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그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 3.1운동과 기독교
 이 운동은 실제적으로 기독교가 주도한 운동이었다. 33인 중, 16명이 목사였고, 태화관에서 불교도인 한용훈의 만세 삼창을 끝으로 33인 모두 연행되었지만,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은 경신학교 출신의 정재용이었다. 전국에서 이 운동이 일어날 때, 집결지는 교회나 기독교학교였고, 앞장 선 사람들도 기독교학교 교사거나 기독교학교 학생들이었다. 

교회 안수집사 이상 직분자 50%가 옥고를 치르거나 죽었고, 약 28,000명의 교인들도 옥고를 치르거나 죽었다. 기독교가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자결주의 사상이 선교사들을 통해 교인들에게 설교로 전해졌고, 총회, 노회, 시찰회, 당회라는 기독교 특유의 조직을 통해 전국으로 일시에 확산될 수 있었고, 각종 유인물을 교회 안에서 등사로 찍어 대량으로 살포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주장한다. 3. 1운동은 기독교가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운동이었다.

3. 오늘의 현실
 당시 기독교인은 인구의 1.5%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거대한 운동을 주도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 인구는 20%에 육박 한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은 그때와 비교해 보면 빈약하다. 슬픈 현상이다. 물론 당시는 독립운동이었으니 당연히 참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 점을 감안해도 당시와 비교하면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오늘날 목사들의 설교가 필요 이상으로 개인구원에 집중하고 특히 기복주의 설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치유와 위로 설교에 치중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에게 사회개혁을 위한 용기를 심어주지 못하는 데 있다. 둘째, 애국 운동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하나 되는 사회운동을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

3.1운동은 종교 운동이 아니라 애국운동이다. 그래서 모든 종파, 즉 기독교, 불교, 천도교, 대종교 등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애국운동도 이념으로 갈라져 있다. 진보는 친북 쪽으로, 보수는 친미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3.1운동은 이념 운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모든 운동은 이념화 되어 있다. 그래서 슬프다.


4.앞으로의 과제
 이제 곧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당시의 과제는 독립이었지만 오늘의 과제는 통일이다. 통일을 이루어야 완전한 광복이요 3.1 운동도 결실을 맺는 것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이념적 접근을 극복해야 한다.

굳이 이념을 강조한다면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민의 자유가 보장된 통일이어야 한다. 친북도, 친미도 아닌 친 국민이어야 한다. 국민들을 잘 살게, 바로 살게 하는 것이 이념이어야 한다. 그런 날이 우리에게 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인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