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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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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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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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미술 간파하기(49)

자신의 분깃을 받아 집을 나가 방종하며 감각에 충실한 삶을 살다가, 궁지에 몰린 후에야, 근본을 알고 그 순간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 충실하게 일을 하고 근검절약한 모범생 큰 아들! 상을 받아야할 삶을 살았음에도 아버지로부터 걱정을 들었던 큰 아들의 비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겪은 고난의 길! 요셉, 모세, 다윗의 삶뿐만 아니라 과학 만능인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현장에서도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100년짜리 우리의 짧은 인생으로 기준하니 그 결과를 볼 수 없어서인지, 아니면 주님의 뜻을 알 수 없어서인지, 인간적인 판단으로 볼 때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생명들이 있는 반면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 목숨 몇몇 정도는 안중에도 없으며 테러와 전쟁으로 집단 학살도 서슴치 않는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지도자들은 눈앞의 이득을 위하여 상식도 버렸다. 염치도 없다. 그저 자신을 변명하고 상대를 공격하기 바쁘다.

▲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 34.5 X 25 Cm, 종이에 연필, 2017.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믿어지지 않는다. 솔직한 고백이다. 세상의 지식, 알면 알수록 믿음은 흩어지고 그 믿음이 싹을 띄우면 즉시 폭풍우가 몰아쳐 싹을 잘라버린다. 뿌리채 뽑아버린다. 인간적으로 판단할라치면 너무나 궁색하기 그지없다. 호수 저편으로 제자들을 먼저 보내신 주님! 당신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던 그 제자들에게도 주께서는 무서운 풍랑을 주셔서 그들을 떨게 하신 후에 그들을 위로하셨다. 왜 그리하셨을까? 주님을 따르면 왜 연단은 필수코스일까? 

지금은 이런 저런 것들에 미혹될 때가 아니다. 초등학문이나 어린아이같이 칭얼댈 때가 아니다. 다만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따라서 필자는 시편을 드로잉 하는 중에 그 몇 점에 주목하게 됐다. 소개하는 작품도 그 중 다윗의 고백을 에스퀴스 해본 것이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란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 69:17. 주님께서 이루실 그의 때를 기다리며...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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