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주차장도 복잡한데 자전거 타고 가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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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주차장도 복잡한데 자전거 타고 가면 어때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7.02.15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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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자전거 살려 새 세상 만든다…사랑의자전거 정호성 대표

그날은 가장 추운 날이었다. 더구나 햇볕이 닿지 않는 고가도로 아래의 칼바람은 더욱 위세를 부렸다. 이곳에서 폐자전거로 ‘푸드바이크’를 만들려 애쓰는 이 남자의 코엔 콧물이 어른거린다. 고양시 행주산성 입구에 있는 사단법인 사랑의 자전거의 정호성 대표다. 

사회적 기업인 사랑의 자전거(02-745-9028)는 곳곳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자전거를 수거해서 리사이클링 작업을 한다. 재생자전거로 팔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료로 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전거와 관련된 신규 일자리까지 창출하고 있다. 더 나아가 환경오염을 줄이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자전거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일 년이면 보통 2천여 대 이상 수거된 자전거들이 이곳에 빽빽이 모로 쟁여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자전거들이 지금은 죽어있다. 주일에는 새뜻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이기도 한 정 대표의 손길이 닿으면 새 생명을 얻는다. 지금까지 이렇게 거듭난 자전거들이 7천 5백여 대.

▲ 목회 초기부터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빈민선교에 뜻을 두었던 정호성 사랑의 자전거 대표는 이제 폐자전거를 재생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개발하여 나눔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일석삼조 폐자전거 재활용
“벌써 10년 됐습니다. 처음엔 북한에 주려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러나 자전거로 할 수 있는 좋은 사업들이 아주 많아서 지금까지 다양한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창업을 위한 푸드바이크를 개발 중에 있죠.”

이날도 인근 대안학교 학생들이 와서 자전거 정비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사랑의 자전거는 일산과 서울 동대문에 자전거평생교육원을 두고 정비 기술 등을 가르치고 있다. 국비지원과정과 자부담 과정이 있다. 점점 심각해질 대기오염 문제를 생각하면 자전거 정비 등 이와 관련된 기술은 전망이 밝다.

“얼마 전까지는 푸드트럭으로 청년창업을 하도록 많이 권장했는데 아무리 작아도 3천만 원 이상이 들기 때문에 가난한 청년들에겐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폐자전거를 활용해서 손수레와 결합하여 이동식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나 다코야끼 판매점을 하게 된다면 누구나 해볼 만할 겁니다.”

지난 해 말에는 폐지 수거용 손수레를 자전거로 만들어 노인들에게 60대를 기증했다. 펑크의 우려가 없는 통타이어로 바퀴를 하고 경광등을 네 귀퉁이에 달았다. 노인들에게 알맞은 사이즈에 브레이크 기능도 있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 독지가는 더 많이 만들어 나눠드리라고 1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폐자전거를 고쳐 어려운 공부방 아이들에게 주려고 해도 요즘 아이들은 눈높이가 높아져서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가난한 개도국으로 보냅니다. 재작년까지는 미얀마에 1000대를 보냈어요. 자전거만 보낸 게 아니고 그곳에 가서 현지인들에게 자전거 정비기술 교육까지 시켜줍니다.”

자전거만 주고 이걸 정비할 수 있는 기술을 주지 않으면 얼마 안돼 또 다시 폐자전거로 버려질 수 있다. 자전거가 지속적으로 이들의 ‘먹거리’가 될 수 있도록 기술교육까지 전수해주었고  정비소를 만들어 자활사업이 되도록 돕고 있다. 

안정된 자리 두고 고생길로
정 대표는 이 일을 맡기 전까진 ‘자활사업’ 실무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 시작은 가난한 삼양동 산동네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까지 인연이 닿는다. 지금은 개벽천지해서 부티 나는 아파트 촌이 됐지만 그의 어린 시절 삼양동 산동네는 궁핍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이들에게 직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신학교 갈 때부터 사도 바울의 텐트 미션을 생각했어요. 졸업하면 기술을 배워 내 생활기반을 가지고 목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한신대를 졸업하자 자동차 운전부터 배웠다. 삼양동 빈민지역에서 활동해야 하니 스스로 생계를 감당해야 했다. 가락시장 납품을 하면서 목회활동을 했다. 늘 돌아다니는 일이다보니 지역을 섬기기 어려웠다. 거래하던 카센터 사장님을 찾아가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 좋은 직장 놔두고 왜 이거 배우려고 하냐고 묻더라고요. 사정을 말씀 드리고 거기서 어린 정비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기술을 배웠어요. 카센터 차리면 수입도 벌고 또 차로 장사하는 분들을 도울 수도 있겠다 싶어서 1급 정비사 자격까지 땄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자본 없이 시작하다 보니 적당한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돈을 좀 만지려면 속된 말로 ‘눈탱이를 쳐야’ 벌리는데, 목회자 양심상 그것도 마뜩찮았다. 결국 2년 만에 다 털어버렸다.

“그때 마침 보건복지부에서 자활사업을 시작한다며 참여할 기관을 모집했습니다. 평상시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돈을 지원해주면서 하라고 하니 너무 좋았죠. 그래서 그 일을 하게 됐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겐 집수리 사업이 생활면에서나 돈벌이에서나 가장 적당한 사업이었다. 그도 집수리를 배우며 10년 동안 이 일에 매달렸다. ‘집수리 실무’라는 책까지 만들어 전국의 자활센터 200여 곳에 배포하기도 했다. 

“성북구자활센터장에 이어 종로센터장으로 6년 일하고 서울광역자활센터가 만들어질 때 초대 센터장을 맡았죠. 한 3년 일했나요, 재계약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랑의 자전거 일을 해달라고 제안을 받았습니다. 고민이 좀 됐습니다.”

교회 자전거 타고가기 운동
센터장으로 있으면서는 월급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따박따박 월급을 주었다. 안정된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건 그의 내면 속의 갈등이었다. ‘국가에서 월급 받는 건 이제 그만해야하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자활사업을 위해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늘 공무원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 답답하죠. 자꾸 공무원들에게 끌려 다니게 되고, 제재도 심하고 그러면서, ‘내가 월급 받기 위해서 여기 다니나’하는 갈등이 생긴 거죠.”

지금 그는 마치 온실에 있다가 삭풍이 몰아치는 들판에 나온 격이다. ‘대표 이사’이라는 괜찮은 직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지금 한지에서 콧물을 훔쳐가며 자전거를 뜯었다 붙였다 하고 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금 1인 3역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부터, 폐자전거 수거와 수리, 행정까지 도맡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려운 살림이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고마울 뿐이다.

“자활센터장 할 때보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일은 훨씬 재미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자전거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거든요.”

맞다. 보기 흉한 폐자전거를 수거하고 이를 재활용해서 쓰니 이 얼마나 소중한 환경보호 사업인가. ‘폐지손수레’나 ‘푸드바이크’ 같은 신제품을 발명하는 일(?)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그는 지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자전거’ 개발도 꿈꾸고 있다. 또 자전거로 창업도 돕고, 무엇보다 국민건강에 기여하고 있으니!

“선진국은 대기오염 막으려고 시내에서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자전거 도로나 주차장이 없어요. 그러나 대기오염, 기후환경 등을 보면 대안은 자전거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이 일에 앞장섰으면 좋겠어요.”

교회마다 주자창 문제로 골머리 아픈 곳이 많은데, 이거 어떤가? 주일날 온 가족이 자전거 타고 교회가기!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기름 값도 절약하고, 공해도 예방하고, 무엇보다 건강에 유익하다. 많은 교인들이 함께 자전거 타고 교회 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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