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나라 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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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라 다른 생각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7.02.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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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23)

제주에 살면서 육지(여기서 육지라 함은 서울을 비롯한 모든 지역을 말합니다)에 있는 분들의 안부 전화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비가 억수로 왔다거나 눈이 1미터나 왔다거나 하면 관심 있는 이들의 전화를 받게 마련입니다. “피해는 없습니까?”, “교회는 무사합니까?” 그런데 그 때 참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눈은 1미터가 왔다고 방송에서 난리지만 그것은 한라산의 경우고, 시내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큼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우도 마찬가지입니다. 500밀리미터도 더 왔다고 하지만 그것 윗새오름에 쏟아진 비의 양이지 시내에 온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눈이 엄청 왔다고 방송에 난 듯 합니다. 아마 방송에서 큰 눈이 왔다고 한라산 그림이랑 나온 듯 합니다. 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데 오지도 않은 눈을 엄청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고, 사실대로 “눈이 별로 안 왔는데요”라고 대답하면 또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그래서 얼버무리다가는 “여기는 한라산과 평지의 표고 차가 커서 보도되는 눈비의 양이 한라산과 시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주로 눈 덮인 한라산의 실감나는 장면만 내보내기 때문에 전혀 다릅니다” 하고 말합니다.

한 나라에 살면서도 정보와 이해의 차이로 엄청난 오해를 만나기도 합니다. 한번은 바람이 엄청 부는 날이었는데 비행기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흔들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비행기에서 승객들이 트랩을 내려오는데 모두를 날려버릴 것 같은 강풍이 불어댑니다. 내리는 제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그러다 제 앞에서 내리는 여자 승객들이 놀라서 하는 말이 “야, 정말 바람 장난 아니네!”, “진짜 제주 바람 무섭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센 바람은 제주에 사는 이들도 일 년에 한두 번이나 몇 년에 한 번 경험하는 강풍입니다.

모두에게는 아니지만 가끔 제주에서 나는 한라봉이나 맛있는 신품종 귤을 선물 받거나, 아니면 몇 상자 구해서 평소에 존경하는 분들에게 선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받으신 분이 전화를 하셔서 잘 먹겠노라는 인사를 하십니다. 거기까지는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정 목사님은 참 좋으시겠습니다. 맨날 이렇게 맛있는 귤 실컷 잡숫고 사시니!” 하고 말합니다. 물론 악의로 하는 말도 아니고, 일부러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여기 있다고 그렇게 맛있는 귤 매일 실컷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저도 아직 돈 주고 사 먹어보지 못했어요.’

물론 속으로 하는 말이지만 제주도를 몰라도 한참 모르시는 듯 합니다. 배 고장에 사는 분들이 배를 보내줄 때마다, 혹은 사과나 특산물이 나는 고장에서 그런 걸 보내줄 때마다 제 속에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귤 고장이라고 귤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고, 사과 주산지라고 사과가 그냥 생깁니까? 다 돈 두고 사야지요. 마음이 있어야 보내시지요. 정작 거기 계신 분들은 낙과나 잡숫고 사실 터인데 고맙습니다.’ 그나마 제가 현지에서 경험하며 배운 작은 이해심입니다. 안 그랬으면 저도 그 분들이 힘도 안 들이고 그것들을 보내주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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