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신(42) 북한의 기독교는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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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신(42) 북한의 기독교는 죽지 않았다
  • 김창범 목사
  • 승인 2017.02.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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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목사 / 더미션로드 대표

최근 한 북한선교사는 외화벌이 일꾼들의 우두머리를 만난 일이 있는데, 그의 입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제자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열거하면서 그들 가운데 가룟 유다 같은 배신자는 하나님도 처단했다며 어떤 경우에도 당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당신은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강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은근히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 고위급 인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는 걸까? 

1950년 조선중앙연감에 따르면 북한정권 수립 후, 북한 땅에는 20여만 명의 기독교 성도들이 있었고 평양을 중심으로 2천여 개의 교회가 있었다. 목사와 전도사 등 목회자가 9백여 명, 장로가 2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은 북한 땅에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바 있다. 6.25전쟁 이후 1955년까지 진행된 기독교 말살 정책에 의해 표면상 북한교회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주민의 성분조사를 통해 기독교인을 끊임없이 색출하여 수용소로 보내고 처형하는 짓을 계속했다. 이로써 기독교는 북한에서 뿌리까지 없어졌다. 

이처럼 북한의 기독교 말살은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1972년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한은 남한이나 해외 교회들이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된다는 점을 간파하고 가짜교회를 세워 남한교회와 교류를 시작했다. 조선기독교연맹을 비롯하여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그 현장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많은 돈의 지원을 받으며, 남한에 큰 혼란을 심는 공작의 기회로 삼았다. 북한도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자 교회들은 흥분했지만, 그것은 대남전략의 하나일 뿐이다. 북한은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소수 요원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쳤다.
 
북한의 보위부 요원들은 서방세계의 기독교 유입을 감시하고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기독교 강습을 수시로 받는다. 특히 해외파견을 앞둔 요원에게는 자유세계에서 부딪칠 기독교의 다양한 공격에 굴하지 않는 투철한 방어 의식을 주입한다. 필요에 따라 이들에게 성경의 존재를 공개하고 그 약점을 가르친다.

가장 큰 약점으로 내세운 것은 성경이 비과학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진화론적 차원에서 창조론을 공박한다. 또 기독교의 속임수와 위험성을 주지시킨다. 직책에 따라 십계명과 주기도문도 암송시킨다. 심지어 조선어성경까지 발간할 정도다. 

남한교회라는 외화벌이의 황금어장을 이용하려고 북한은 과감한 전술을 동원한다. 첫째는 위장전술이다. 가짜교회, 가짜성도, 가짜예배를 통해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한다. 이 가짜신앙은 어느 정도 먹혀들어 남한교회의 감동과 호감을 얻어냈다. 둘째는 공격전술이다.

접근해오는 선교의 손길로부터 주체사상의 성벽을 지키기 위해 경고장을 던지고 감시의 레이더를 작동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기독교에 물들지 않고 북한주민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대개 양심의 갈등을 회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령을 태양으로 가르치는 북한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능가하는 존재로서 수령을 세우기 위해 수령을 하나님으로 각색한다. 수령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신앙을 강요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모순에 직면하게 되고 더 깊은 양심의 갈등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 유입을 방어하기 위해 보위부 고위 요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지만, 그 결과 북한은 기독교로부터 내적 공격을 당하게 된 셈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기독교가 북한 심장부에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회피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이 되었고, 기독교 말살정책은 결국 기독교 회생정책으로 바뀌고 말았다. 북한의 기독교는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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