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의 부모로, 노숙인들의 안식처로 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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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들의 부모로, 노숙인들의 안식처로 섬깁니다”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7.02.0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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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진행되는 자선냄비, 복지사업 위해 성금 사용
▲ 한국구세군 자선냄비를 통해 모인 성금은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여성, 다문화, 긴급·위기가정, 지역사회, 사회 소수자, 해외 및 북한 등 다양한 사업을 위해 사용된다.(사진제공:한국구세군)

매해 12월이 되면 빨간색의 자선냄비가 거리에 하나 둘 씩 설치된다. 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자선냄비는 종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린다. 온정의 손길이 모인 자선냄비는 기업들이 후원한 성금과 함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복지시설 혹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분배된다.

한국구세군(사령관:김필수) 사회복지부 곽창희 부장은 “1928년 한국으로 들어온 자선냄비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며 “매년 모금된 성금은 아동 및 청소년, 노인, 장애인, 여성, 다문화, 긴급·위기가정, 지역사회, 사회 소수자, 해외 및 북한 등 다양한 사업을 위해 사용한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온정이 담긴 자선냄비 모금액이 어떻게 사용될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구세군 산하 복지 시설을 찾아가봤다. 

친부모의 마음으로 돌보다
이달 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김하늘(가명) 군은 졸업과 동시에 후생원을 퇴소해야 한다. 태어나자마자 미혼모인 엄마의 품에서 버려진 김 군은 영아 시설에서 머물다가 3살이 되던 해 구세군 서울 후생원으로 입소했다. 

후생원에서 김 군은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다. 학원에 다닌 적 없는 그는 혼자서 피아노를 연습해 현재 후생원 교회의 반주자 역할을 담당한다. 또 자신의 꿈인 요리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을 따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는 후생원 교사들이 인정하는 학생이다. 

후생원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김 군은 그동안 구세군에서 받은 사랑을 거름삼아 유학에 도전한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그에게 학생비자 발급은 어려운 상황이다.  

유학의 가능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김 군은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부모의 가정형편을 생각하느라 지금과 같은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가 없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나에게 많은 기회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후생원과 선생님들에게 늘 감사하다”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구세군 서울 후생원은 김하늘 군처럼 부모가 더 이상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현재 75명이 머물고 있는 이곳은 만 3세에서 만 18세까지 입소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 혹은 가정폭력으로 집에서 보호받기 어려운 아이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 

후생원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가슴 속에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버려지거나 학대받은 아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또래보다 학습 능력이 낮은 상태이다. 후생원은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뒤따라갈 수 있도록 외부 강사를 청빙해 매주 교육을 진행한다. 

또한 만18세,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후생원을 떠나야 한다. 기관을 떠난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살 곳과 생활비다. 그렇기에 이 곳 아이들은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후생원에서는 이들이 기관을 떠난 뒤에도 거주할 수 있는 자립형 그룹홈을 마련했다. 그룹홈은 만24세까지 거주하면서 자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길 잃은 자의 피난처 되다
서울 충정로에 있는 구세군 브릿지 종합지원센터는 오후가 되면 노숙자들이 하나 둘 씩 줄을 서기 시작한다. 오후 2시부터 30분 동안 나눠주는 번호 대기표를 받기 위해서다.

선착순 64명 안에 든 노숙자는 차갑고 딱딱한 길 위가 아닌 센터 내 따뜻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 특별히 센터는 동절기가 되면 바닥에 보일러를 틀고 매트를 깔아 100명 이상의 인원까지 잠을 잘 수 있도록 설비한다. 

약 2년 전 노숙자의 길을 택한 이성준(가명) 씨. 이 씨는 연이은 실직으로 노숙자가 됐고, 지난해 7월에는 자살을 시도했다. 응급실로 실려 간 그에게 한 간호사가 구세군 브릿지 종합지원센터를 소개해줬다. 퇴원 후 이 씨는 센터를 방문해 샤워도 하고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며 추위를 피해 잠을 자는 등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성준 씨는 “노숙자들에게 겨울은 가장 힘든 계절이다. 여름은 어떻게든 더위를 이겨낼 수 있지만, 겨울은 손쓸 도리가 없다”며 “힘든 날씨에 구세군의 브릿지 종합지원센터는 감사함 그 자체다. 규칙이 있어서 일부 노숙자들은 그 규칙을 지키는 것에 힘겨워하지만, 오히려 그 규칙을 잘 지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곳”이라며 마음을 표했다.

센터의 규칙은 까다롭지 않다. 대기 순서만 잘 지키고 소란만 피우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 씨는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거리에서 타인의 규제를 받지 않고 지내기 때문에 센터의 규칙조차 지키기 어렵다”며 “구세군 센터와 비슷한 센터 여러 곳이 있는데, 얽메이기 싫어서 이용하지 않는 노숙자도 꽤 있다”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노숙자 박민수(가명) 씨는 2008년부터 노숙 생활을 이어왔다. 아내의 죽음과 사업의 실패로 집을 떠나 길거리로 나온 그는 두 달 전부터 브릿지 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자활근로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노숙자들이 하루 3시간씩 센터에서 근무하고 정당한 급여를 받아가는 자활근로 프로그램은 이들이 자립해서 사회 속으로 다시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박 씨는 “노숙자들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거리에서 생활한다. 그렇기에 노숙자들에게 자활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며 “구세군 브릿지 종합지원센터에서 숙식을 제공해주고 일자리 상담도 도와주며 다시 사회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알려준 덕분에 자활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따뜻한 세상 꿈꾸는 기부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했다.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배 한척이 파선당해 1,000여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 불황으로 난민들과 도시 빈민들은 추위를 견디며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야 했다.

이를 본 조세프 맥피 구세군 사령관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오클랜드 부두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란 메시지를 붙여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맥피 사령관은 쇠솥에 담긴 기금으로 난민과 빈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맥피 사령관의 이웃을 위해 고민하던 마음이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웃을 위해 내미는 따뜻한 손길로 이뤄진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액은 브릿지 종합지원센터와 서울 후생원 사업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복지 업무에 지원된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거리모금 총액은 약 38억 원이었다. 이렇게 모금된 성금은 구세군이 펼치는 사회 복지 사업 단체 기관으로 각각 분배된다.

소외된 노인과 장애인을 보호하고 돌보며 이들을 위한 환경 및 인식 개선 사업을 위해 힘쓰고, 자라나는 아동 및 청소년들의 교육과 장학, 환경개선사업 등을 펼친다. 또 위기에 놓인 여성, 미혼모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문화 가정의 안정적인 사회 적응과 이들의 삶을 위한 사업을 위해서도 자선냄비 성금이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매주 노숙자들을 위한 아침밥을 챙기고 약물중독자, 실직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자활과 회복을 위한 사업, 자연재해 등 재난과 사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과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쪽방촌 거주민들을 위한 사업도 지원한다. 

구세군이 펼치는 해외 사역에도 자선냄비 성금이 보탬이 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해외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수술 사업을 펼쳐 2015년까지 313명의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또 세계 3대 오지 중 한 곳인 인도네시아 파푸아 섬에 위치한 머라우케 울린린 지역을 방문해 주민들이 의료 및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공공 물품을 지원했으며, 북한을 위한 지원 사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구세군 곽창희 사회복지부장은 “매년 구세군 자선냄비에는 따뜻한 미담과 함께 시민들이 이웃을 생각하는 온정이 담긴다”며 “자선냄비만큼은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 있는 소외되고 병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구호의 손길로 닿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구세군은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라고 세운 심부름꾼”이라며 “이후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선한 사역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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