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볼 수 없을 때 희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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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볼 수 없을 때 희망을 찾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7.01.25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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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9주년 특집 ‘예수님’ 희생에서 빛 찾은 시인 윤동주
▲ 숭실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윤동주 시인(뒷줄 맨우측)과 문익환 목사.(뒷줄 가운데)

십자가(十字架)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중략)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시인 윤동주의 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고뇌와 갈등 속에서 희망을 갈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들여다 보인다. 희망을 위해 ‘희생’이 필요하며 그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에서 찾는다. 

희망을 찾았던 시인이지만 윤동주는 결코 희망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그는 1917년에 출생해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불과 27세의 나이에 죽는다. 짧아도 너무 짧다. 그것도 일제의 생체실험 만행의 희생자였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동주’는 윤동주를 재조명하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선물했다. 가장 인간적인 인물의 주는 선물 ‘희망’이었다. 

다시 시 ‘십자가’ 중 구절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에 보면 십자가의 ‘희생’과 햇빛의 ‘희망’이 깊이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기꺼이 희생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희망은 운동주가 바라는 조국의 해방이었을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희망’을 찾아갔던 믿음의 선배였음은 틀림없다. 

또 다른 시 ‘쉽게 씌어진 시’에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에도 윤동주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윤동주는 만주 용정에서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다녔고, 미션스쿨 숭실학교에 진학했다. 1942년 미국성공회가 설립한 릿쿄대학 영문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동지사대학으로 옮겨 재학 중이던 1943년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다. 윤동주가 릿쿄대학에서 1875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표어로 설립된 또다른 기독교대학 동지사대학으로 옮긴 것도 신앙과 무관치 않으리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윤동주 시인의 숭실중학교 동문들 중 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 살다 의문사를 당한 장준하 선생, 통일운동의 길을 닦은 문익환 목사가 있다. 모두가 희망을 볼 수 없는 시대에 희망을 찾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과 정신의 뿌리는 윤동주 시인이 쓴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 추모사업을 펼치고 있는 대한성공회 유시경 신부(릿쿄대학 교목 역임)는 “시대의 비극 가운데 청년의 인생은 너무도 일찍 막을 내리고 잠들었다. 지금 윤동주를 기념하는 것은 왜곡된 시대 속에서 인생과 생명을 빼앗긴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고, 또 한명의 윤동주를 낳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다시금 우리가 윤동주를 떠올려야 하는 이유가 어둠의 시대에 발견해야 할 ‘희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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