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찾아낸 종교개혁 관련 3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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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찾아낸 종교개혁 관련 3가지 질문
  • 승인 2003.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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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종교개혁의 원인·배경·인물은
원인: 문예부흥(르네상스)운동에 따른 인본주의 사상의 팽배, 십자군운동의 실패로 인한 교회 및 교황권의 추락, 면죄부 판매.

배경: 직접적 원인으로는 당시 교황이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대사령을 반포하고, 이에 과장되게 판매한 일부 성직자, 특히 독일에서 그 정도가 심해 1517년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수사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항으로 된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발단됨.

인물: 마르틴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 결과: 종교 분열(프로테스탄트교회(개신교)의 탄생), 가톨릭교회 쇄신 등.

Q : 종교개혁 이전의 성경과 독일어 성경이 갖는 의미는?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하기 전에는 라틴어로 쓴 성경이 전부였다. 그 당시 라틴어는 그것을 공부했던 성직자와 지식인들만이 쓸 수 있었던 언어였다. 즉, 평민들은 성직자들이 말을 지어내서 해도 알 길이 없었다. 번역의 이유가 됐던 면죄부도 성경을 읽을 줄 모르는 평민들로서는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독일어 성경이 나오면서부터 상황이 역전된다. 당시 성경은 개인이 소유하거나 읽을 수 없게 돼 있었는데 이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번역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보통 사람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성직자의 말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원동력 중 하나다.

: 루터와 칼빈의 차이점은?
루터는 독일 출신의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수사 신부로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신학 교수를 했다.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 믿음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성당에 게시해 종교개혁의 동기를 제공한 인물이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개혁을 주장했지만 당시의 정치·종교적 이유 등으로 인해 가톨릭교회를 떠나 프로테스탄트의 시조가 됐다. 농민 반란 때는 지주들의 편을 들어 농민들의 지지를 상실했고, 당시 최대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무스와도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인쇄술의 발명에 때맞추어 성경을 처음으로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했다. 황제파와 루터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화의를 통해 루터파 교회가 승리, 정식으로 교회로 인정됨.

칼빈은 프랑스 출신의 평신도로 루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 개혁을 주도했으나 실패하고 스위스로 망명해 제네바를 중심으로 강력한 신정정치로 개혁을 주장했으며 종교개혁에 성공했다.

그의 신학은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예정된다는 예정설로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 등이 이어받아 장로교 교리를 이루는 칼빈신학을 낳게 된다. 기독교 강요 등을 저술하는 등 프로테스탄티즘의 중심 신학자이기도 하다. 상공 시민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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