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덮친 여수수산시장에 온정의 손길, “잿더미 속에 피어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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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덮친 여수수산시장에 온정의 손길, “잿더미 속에 피어난 ‘희망’”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7.01.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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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50년 전통의 여수수산시장, 화재 피해현장을 가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래기만 했겠어? 기절을 해부렀지.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서 말이 안 나와. 오늘은 그래도 돕는 손길이 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어두 캄캄해서 손을 댈 수도 없었다니께.”

며칠 전만 해도 해산물을 찾는 사람으로 바글거렸던 여수 수산시장.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삶의 터전을 바라보던 한 상인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참았던 속내를 꺼내놓는다. 화재 소식을 듣고 찾은 수산시장의 처참한 모습에 순간 숨이 탁 막혔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타다 남은 가전제품이나 물건을 꺼내놓고 이리저리 물수건으로 닦아보지만 그을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이 뿌려진 가전제품은 아무리 외관이 멀쩡해도 사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라도 손을 써 보는 것이다. 그 옆에는 이제 막 담근 갓김치를 담아놓은 통들이 쌓여있다.

수산시장 2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재인 씨(여·75)가 설 대목을 앞두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담가 놓은 김치다.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상온에 오래 방치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버리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대로 둔 것이다. 이 씨는 “아직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봄 장사를 한다고 돌산갓김치를 이렇게나 많이 담가 놨는데, 이제는 다 못쓰게 되어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화마가 휩쓸고 간 여수 수산시장의 처참한 모습
▲ 화마가 휩쓸고 간 여수 수산시장 내부의 처참한 모습.

‘하필이면 설 대목 앞두고…’

지난 15일 새벽 여수 수산시장에는 전기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새벽 2시 21분쯤 시작된 불은 2시간 여 만에 진압됐지만, 이 불로 점포 125개 중 116개가 불에 타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한창 설 대목을 맞이해 손님맞이로 정신없을 전통시장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매일 상가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상인들에게는 청력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 20일 방문한 여수 수산시장은 경찰의 현장조사가 끝나고 한창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타버린 내부는 새까만 그을음만이 가득했다. 건물 근처로는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칠흙 같은 어둠 속 굴삭기가 타다 남은 건물의 자재와 각종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 안은 온통 검은 그을음으로 가득했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간판들만이 수산시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화재가 난 현장을 둘러보며 인근 주민들도 연거푸 한숨을 내쉰다. 일터를 잃은 상인들의 마음만큼은 아니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은 매한가지다. “내가 매주 한 번씩은 꼭 들리는 시장이여. 누가 어디서 일하는지 얼굴도 다 아는데 안타까운 마음은 다 똑같제. 그나저나 빨리 수습이 되어야 할텐디. 이를 어쩌면 좋나.” 화재소식을 듣고 일부러 시장에 찾아왔다는 한 마을 주민이 검게 타버린 시장을 보고 한마디를 전한다.

▲ 화재 피해가 발생한 여수 수산시장 입구에 위치한 식당의 모습. 21일 상인들이 판매 재개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산시장 맞은편에는 피해 상인들을 위한 쉼터공간이 부스형태로 마련돼 있었다. 상인들의 얼굴에는 찹찹한 심경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전국 곳곳에 대설특보가 발효된 20일 여수에는 강한 바람과 첫눈이 찾아왔다. 여수는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날씨인데, 이번처럼 눈발이 세게 내리는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시장 맞은편 여객선터미널 공터에 마련된 부스에는 수십 명의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장 장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에만 있는 것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상인들을 위로하며,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다. 그나마 불에 타버린 수산시장 옆에 마련된 공터와 도로를 중심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임시판매장이 설치되고 있었지만, 전기시설과 배관시설 등의 공사가 끝나고 실제적으로 운영이 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강미진 집사(50세·은파교회)는 “처음 화재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정도로 피해가 큰 줄 몰랐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을 찾아보니 모든 시설물이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이 없었다. ‘주여 주여’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특히 대목인 설을 앞두고 화재가 발생해 피해규모가 더욱 컸다. 박 집사는 “시장이라는 것이 어디든 장사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그런데 비수기를 견딜 수 있는 때가 바로 설, 추석 등의 명절인데, 가게마다 설을 앞두고 평소보다 물량을 더 많이 들여놓고 있었는데 화재가 발생했다”며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박 집사는 신앙인으로서 버틸 수 있는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신앙적으로는 그동안 제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자연스럽게 기도의 무릎을 꿇게 됐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화재가 여수 수산시장이 더 활기를 되찾고 상인들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화마가 휩쓸고 간 여수수산시장 입구에는 폴리스라인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도 온정의 손길에 ‘희망’ 기대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로 70억 원이 넘는 피해액을 추산했지만 실질적인 피해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절망스런 상황에도 상인들이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산시장 화재 사건에 대한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후원의 손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자치단체와 기업, 개인 독지가 등의 성금과 물품 후원이 이어지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도 매일 시장에 나와 상인들을 돕고 있었다.

수산시장 맞은편에는 법무부 법률상담 부스와 심리상담 부스를 비롯해 각계 기업에서 다양한 간식과 생활용품이 구비된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이날도 오전 11시 30분 점심때가 가까워 오자 대한적십자 여수봉사대 회원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을 상인들을 위해 배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 지난 21일 여수수산시장에는 화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의 재개를 위해 대한적십자 여수봉사대원들이 배식봉사로 섬기고 있었다.

1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여수봉사대는 화재가 발생한 이후 화요일부터 상인들에게 매일 점심과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있으며, 수산시장이 정상화 될 때까지 배식봉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적십자 여수봉사대 최상철 회장은 “상인들을 볼 때 한명한명의 아픔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그래도 이 따뜻한 한 끼가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여수시 교회연합회(회장:고만호 목사)도 지난 17일 수산시장을 방문해 위로의 기도와 온정의 손길을 보탰다. 피해를 입은 상인들을 위로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졌을 뿐 아니라 쌀 20kg 100포를 비롯해 떡과 과일, 피로회복제, 무릎담요 등의 선물을 전했다.

총무 장성기 목사는 “목사님들이 직접 상인들을 만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손을 잡고 기도해주니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래도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이번 어려움을 잘 극복해서, 새롭게 시장이 재정비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수습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인들의 마음을 달래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나눔의 소식은 실의에 빠진 상인들의 마음에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는 따뜻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온정의 손길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 한 상인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많은지 몰랐다. 그동안 장사만 하느라 나밖에 몰랐었는데, 막상 도움을 받아보니 이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됐다”며, “앞으로는 받은 나눔을 꼭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이후부터 매일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위로하고 있는 여수시의원 박성미 집사(산돌교회)도 “상인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하고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전국 각지에서 전해오는 도움의 손길에 감사하고 있다”며, “지역사회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데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에 대한 관심 높아지는 계기가 되길

화재가 발생한 전남 여수 수산시장은 50년의 전통을 가진 여수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전통시장으로 1968년 개장했다. 활어, 선어, 건어, 패류, 건어물 등 각종 수산물과 야채, 김치, 젓갈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한다.

▲ 화재가 발생한 여수 수산시장의 외관. 한창 복구작업 중인 21일 건물 인근에서도 화재로 인한 재와 매캐한 공기가 느껴졌다.

시장은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을 마주보고 있어 인근 여자만, 돌산도, 여수 앞바다의 많은 섬에서 잡힌 다양한 수산물이 집산하고 있으며, 주변에 돌산공원과 이순신 광장, 돌산대교 등이 있어 하루 2~3천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상당 기간 영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수 수산시장에 화재가 발생하기 몇 달 전에는 대구 서문시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두 화재 모두 전기 누전으로 인한 사고였다는 점에서 전국 전통시장의 안전관리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여수 수산시장은 정부 합동점검단의 화재안전 점검을 받은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했다. 박성미 여수시의원은 “여수에는 15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서, 다른 재래시장의 안전문제도 제대로 점검하고 사회적으로도 재래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회자들의 기도와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함께 현장을 둘러본 여수종교문제연구소 소장 신외식 목사는 “화재현장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지만, 우리 목회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피해당한 주민들을 위로하고 기도하는 일”이라며, “여수 기독교연합단체들도 매주 월요일마다 모여 상안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루속히 사고가 수습되고, 임시 장터도 재개가 이뤄져 상인들이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실 잔뜩 무거운 마음을 알고 떠난 여수 화재 피해현장이었다. 하지만 설 연휴를 앞두고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 속에서도 “그래도 감사”를 고백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는 온정의 손길은 강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불씨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아름다운 나눔의 순환을 통해 여수 수산시장에 다시 기적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여수를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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