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기의 문화칼럼]젊을 때 힘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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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의 문화칼럼]젊을 때 힘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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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1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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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 목사의 G#Eb(God은 # Ego는 b, 즉 하나님은 높이고 나 자신은 낮추는 예배자를 의미)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이 들려왔다. 어린 시절 한 교회에서 자라나며 함께 뛰어놀고 같이 화음을 맞추어 찬양도 많이 하던 오래된 친구였다. 근래 자주 보진 못했지만 월초면 잊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하던 친구다. 가끔 방황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씩 하던 녀석이지만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늘 품고 있던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결혼도 안 한 젊은 친구의 죽음 앞에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 모두 황망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유족들의 뜻을 따라 친구인 내가 생전 처음 장례 절차를 집전하게 되었는데, 유족들을 위한 위로 예배, 입관 예배, 발인 예배를 인도하는 내내 한 곡의 노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례 예배 때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아껴두었던 이 찬양을 불렀다.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그 자리엔 어린 아이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었고 나이 든 어르신도 계셨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젊은이다. 우리의 ‘젊을 때’란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이다. ‘10년 만 젊었어도’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많이, 자주 그 말을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이들(나 자신을 포함한)에게 ‘나이는 몰라도 마음은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릎을 다쳐 재활 하던 당시, 주변의 염려도 있고 나이도 생각하니 어쩌면 다리는 사고 전의 상태로 완전히 되돌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싹텄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전 보다 더 건강하게 회복시켜주실 거란 믿음이 있지만 그래도 불안한건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예배할 때 가장 높이 뛰어오르는 목사’를 자칭하며 열정을 불 태웠는데 예전만큼 열심히 뛰지 못하면 어쩌나 싶다가도 이 찬송을 부르며 스스로를 추스른다.

몸 상태를 되돌릴 수 없다 하여도 열정과 헌신은 사고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 스무 살,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던 그 시간의 온도로 내 삶을 불 지피며, 시간을, 상황을, 나이를, 건강을, 몸을 뛰어넘는 찬양과 예배를 올려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순간은 ‘젊을 때’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모든 순간은 ‘청춘’이다. 젊은 우리는 힘 다하여 그 분과 그 분의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사람의 삶이란 결국 두 개의 숫자로 남는다. 354, 430. 성 어거스틴의 생生과 사死다. 1545, 1598. 이순신. 1906, 1945. 디트리히 본회퍼. 1940, 1980. 존 레논 1938, 2010. 옥한음 1915, 1992. 나의 할머니 심하석.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든 무명의 촌로든 공평하게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보니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덧없기 그지없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가 단순하고도 명확해진다.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을 찰나로 스치는 것이 연약한 우리의 인생이다. 그 눈 깜짝할 순간과도 같은 광음을 지나는 동안 주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야말로 우리 삶의 최고의 영예요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짧지만 눈부시게 하나님을 위해 삶을 불태워 바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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